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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같네… 고문서로 보는 '진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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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같네… 고문서로 보는 '진짜 조선'

입력
2013.12.1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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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조선의 한 가난한 가장이 문서 한 장을 남겼다. 아내가 배신하고 딴 데 시집을 가 버려 분통하기 그지 없으나, 십분 생각해 엽전 35냥을 받고서 혼인관계를 파해 위 댁(宅)으로 보낸다는 내용이다. 돈을 받았다? 위 댁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 이 문서는 언제 씌어졌을까? 이 남자가 직접 쓴 걸까? 이혼하기까지 그는 어떤 곡절을 겪었을까?

이 문서는 전경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과 교수가 쓴 (휴머니스트 발행)에 등장하는, 최덕현이라는 이의 수기다. 저자는 케케묵은 고문서에 깃든 사연을 탐정이 사건을 캐듯 추적한다. 달랑 문서 한 장만 갖고는 내막을 알 수 없어 다른 고문서와 실록, 문집, 족보 등 다양한 사료를 살펴 모자이크 하듯 하나씩 맞춰가니, 구체적 사건과 시대적 맥락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살아 숨쉬는 조선을 만나게 된다. 덕분에 추리소설 읽듯 재미있게 넘어간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이혼, 노름, 재산 분배 같은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이 고문서를 파고든 저자 덕분에 생생하게 다가온다. 요즘의 막장 드라마 뺨치는 불륜이나 패륜 사건이 있는가 하면, 근엄하기만 할 것 같은 사대부가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모습도 보이고, 노름으로 패가 망신한 남자의 후회 막급한 사연도 있다. 예컨대 박의훤이라는 이가 1602년(선조 35년)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눠준 내역을 적은 분재기는 다섯 번 결혼에 네 아내가 모두 부정을 저질렀다고 성토하면서 마지막 다섯 번째 아내가 낳은 두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꼼꼼하게 짠 작전 메모다.

통념을 뒤집는 내용도 있다. 평민이나 천민은 조선시대에도 이혼이 자유로웠고, 조선 전기까지는 왕족이나 양반도 이혼할 수 있었다는 사실, 돈 주고 벼슬을 사는 공명첩을 실은 평민들은 피했으나 나라에서 강매했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조선시대 연구는 흔히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관찬 공식 사서 중심으로 출발하지만, 거기서 장삼이사나 무지렁이 민초의 눈물과 웃음, 당대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당대를 살았던 이들이 직접 작성한 고문서는 그래서 중요하다. 사소하고 하찮아 보여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전문 연구자조차 거의 없지만, 하나하나 캐고 들면 그야말로 역사학의 블루오션, 이야기의 숨은 보물창고라 하겠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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