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안녕하신가요?'를 묻는 지금, 안녕하기 힘들었을 7년의 세월을 거리에서 보낸 이들에게 안녕을 묻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을 것이다.
콜트악기와 콜텍악기는 기타를 만드는 기업이다. 기타를 치는 사람뿐 아니라 기타를 치지 않는 이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기업이다. 2007년 대전의 콜텍공장을 폐업하여 89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부평의 콜트악기에서도 38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는데, 그 해고자들이 7년의 긴 시간을 해고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거리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대법원은 콜트악기의 정리해고에 대해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그에 대해서 사장은 노동자와 예술인들이 점거하고 있던 콜트공장을 철거하여 부숴버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전세계 기타의 30%를 생산한다 하니, 누가 보아도 잘 나가는 기업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기에 독립된 것도 아닌 한 공장이 약간의 적자를 이유로 직원들을 정리해고 하거나 공장을 폐쇄하는 것은 경영학적 관점에서 보아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건 아무리 그럴듯하게 치장해도 엄살로 과장된 한국 자본가들의 고질적인 궁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법원에서도 콜트악기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던 것일 게다.
가난한 이들에게 궁상이란 경제적 처지의 곤궁함에 짓눌리는 것이다. 그것은 가난에 짓눌려 사고나 행동 자체가 빈약해지고 빈곤해지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어떤 걸 해볼 생각을 못하거나 너무 궁핍하게 일을 벌여 실패하거나 더욱 가난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빈익빈의 악순환에 말려들기 십상이다. 그러나 정작 궁상을 떠는 일은 가난한 이보다는 가진 자들에게 더 흔한 것 같다. 가진 자들의 궁상, 그것은 가진 게 있어도 없는 티를 내는 것이고, 곤궁함을 과장하면서 그 곤궁함에 찌드는 것이다. 승승장구하는 기타회사를 거느리고서 약간의 손해를 이유로 많은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는 것, 이런 게 바로 있는 자들의 궁상이 아닌가. 스스로 자처한 것 이상의 정말 초라한 형색인 셈이다.
반대로 콜트ㆍ콜텍악기의 해고노동자들은 궁상과는 반대로 아주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7년을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다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기타를 만들기만 했지 쳐보지 않았음을 깨닫곤 직접 기타를 배워 밴드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이곳저곳 유사한 투쟁현장을 돌며 연주를 한다. 음악만으론 만족할 수 없었는지, 지난 9월에는 대학로의 극장을 빌어 셰익스피어의 고전적 작품인 공연을 했다. 투쟁의 시간을 허송하거나 초라한 형색을 과장하며 동정을 호소하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을 음악과 연극, 미술 등의 예술과 삶이 만나는 적극적인 창조와 생성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그들은 가진 게 없어도 풍요롭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부왕의 죽음의 비밀을 알게 된 햄릿이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는 대사는 아주 유명하다. "시간의 관절이 빠져버렸도다. 오, 저주받은 운명이여. 이 불의를 교정하러 태어난 몸이라니!" 첫 문장의 원문인 'Time is out of joint'는 사람마다 아주 다르게 번역하는데, 앙드레 지드는 이를 '시대가 명예를 잃어버렸도다'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빠져버린 시간의 관절을 제대로 끼워 넣을 운명이란 실추한 시대의 명예를 되찾는 것이고, 그렇기에 불의를 교정하는 것일 게다.
돈 있는 자들이 궁상을 떨며 열심히 일하던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돈 없는 자들을 궁지로 모는 지금 이 시대는 시간 자체가 명예를 잃어버린 시대임이 틀림없다. 그들에게 쫓겨나 이 궁핍한 시대의 비밀을 보게 된 저 해고자들은 햄릿처럼 시대의 불의를 교정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이들이 "안녕들 하신가"를 물어야만 하는 지금 이 시대에, 콜트ㆍ콜텍의 해고자들이 을 앵콜공연하게 된 데는 이런 뜻이 있는 게 아닐까.
거리에서의 7년의 방황은 햄릿의 미친 방황보다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 주어진 운명을 한탄하기보다는 기꺼이 웃으며 받아들이려 한다는 점에서 햄릿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이 햄릿처럼 비극을 연기하지만, 그들의 삶이 햄릿처럼 비극으로 반복되진 않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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