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대법원 판결대로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될 경우 전체 일자리의 최소 1%는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매년 10%가 넘는 중소기업들이 도산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기업들의 부담증가도 문제지만, 이미 일부 외국계 기업들은 인건비상승으로 인한 투자매력감소로 한국탈출 움직임이 감지되는 양상이다.
사실 재계입장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이 '최악'은 아니다. 복리후생비는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데다, 받지 못한 통상임금은 소급청구하기 힘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상임금범위가 실질적으로 확대된다는 것만으로도 기업들이 심각한 비용압박에 직면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판결 직후 "정기상여금이 기본급의 약 70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복리후생비를 제외시킨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소급분을 제외해도 향후 경제계에는 최초 1년간 13조7,509억원, 이듬해부터 매년 8조8,663억원씩의 추가부담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여름휴가비도 연 1회 정기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정기성'을 기준으로 삼은 대법원 논리대로라면 이 역시 통상임금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판결자체를 인정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재계는 이 같은 추가비용이 투자위축과 고용불안, 노사관계악화, 임금양극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변양규 거시정책연구실장은 "통상임금 확대 혜택은 초과근로나 상여금이 많은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에게 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근로자간 임금 양극화가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판결로 통상임금과 관련한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기 때문에 기업들은 패소에 대비한 자금을 충당금으로 묶어두게 될 것"이라며 인건비 증대로 인한 고용여력이 최소 1%정도는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반발이 거셌다. 중소기업중앙회 분석에 따르면 현재 중소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2.6%인데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면서 17% 안팎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전현호 인력정책실장은 "인건비 증대로 인해 매년 10%가 넘는 중소기업들이 부도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번 판결로 외국기업들의 '엑소더스'가 본격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사실 우리나라는 자연적 임금상승에다 ▲통상임금 확대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등 인건비상승요인이 속출, 투자매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상황. 때문에 이번 판결이 한국이탈 분위기를 더욱 재촉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소송과 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한국지엠의 경우, 최근 미국 본사의 생산물량축소결정으로 대규모 사무직 희망퇴직까지 돌입한 상태. 업계 관계자는 "GM본사가 보기엔 생산기지로서 한국의 매력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며 "이 중 대부분은 인건비 부담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했다.
한때 국내에서 연간 1만2,000대의 지게차를 생산하던 클라크 머터리얼 핸들링 아시아(클라크) 역시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과 멕시코에 공장을 설립하며 국내 생산량을 4,000대까지 줄이고 외주인력 100명을 해고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다국적 자동차 부품회사 보그워너 씨에스 등 알짜 외국계기업들 사이에 투자축소, 구조조정, 공장철수 등 '한국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투자여건과 기업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인건비를 대체할 다른 투자유인을 찾지 못한다면 투자도 고용도 실종되는 심각한 산업공동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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