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3 때부터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다. 직업군인이셨다가 막 전역을 하셨던 탓인지 정말이지 전투적인 농사였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에게 하루 일과를 설명하고 계획대로 어김없이 밀고 나갔다. 경운기 헤드라이트까지 비춰가며 일하기 일쑤. "농사는 오늘 못하면 내일하는 거"라고 엄마가 말리셨지만 "농사는 오늘 할 게 있고 내일 할 게 있다"고 하셨다. 나는 일이 힘들고 하기 싫었다. 그런데 가장 짜증나는 일은 바로 마무리였다. 마무리란 다른 게 아니라 모든 농기구를 씻고 원위치에 두는 일이다. 난 아버지한테 말했다. "내일 또 하잖아요. 이대로 뒀다가 다시 해요." 아버지는 가차 없었다. "사용한 것은 다시 그 자리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꺼내서 써야 한다." 나는 동의하지 못했고 투덜거렸다.
얼마 전에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갔다. 거기서 나는 사랑을 주제로 말했다. "사랑은 지금해야하는 것"이라고. 나중은 없다. 나중은 알 수 없지 않은가. 지금 사랑하면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리고 후회없는 이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나중을 염두하면 비겁해진다. 모호하고 집중력도 없다. 지금이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연극을 하면서부터다. 연극은 나중이 없다. 바로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다. 연습도 그렇다. 나중에 행복해지기 위해 연습을 하면 불행해진다. 연습이 행복해야 공연도 좋다. 그리고 그날의 연습은 그날, 지금 마무리해야 한다. 부분을 잡았다면 반드시 전체를 쭈욱 붙여봐야 한다. 안 그러면 하다 만 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그 때쯤이면 다들 지쳐있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의 말처럼 내일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나는 어느 새 아버지 편이 주로 된다. 내일은 또 내일 해야 할 것이 있잖은가.
글을 쓰거나 연극을 하다보면 결국은 숨이 턱까지 찼을 때 결과물이 나왔다. 아무리 스케줄을 잘 관리해도 내 경우는 늘 그랬다. 그전에는 해도 되지 않는다. 그 때가 비로소 밀고 나가야 할 때다. 거기서 멈추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마지막 턱걸이 한 번에 근육이 만들어지듯이 글도 그렇고 연극도 그렇다. 거의 다 된 것은 된 것이 아니다. 다 될 때까지 밀어야 한다. 내공은 뒷심에 있다. 마무리에 지치지 않는 뒷심!
이 말도 해야겠다. 주말에 식구들이랑 오사카에 다녀왔다. 싼 비행기를 타고 가서 싼 호텔에서 잤다. 벽을 보고 감탄했다. 어디를 봐도 타일과 벽지가 제대로다. 마무리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모르타르이든 실리콘이든 옆구리가 삐져나온 것이 없다. 모서리마다 실밥이 안 보인다. 자로 잰 듯이란 말이 제격이다. 지진 때문에 건축술이 좋다는 말에는 도저히 동의를 못하겠다. 나는 건축가의 내공과 디테일을 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저가호텔이다. 우리나라에 오자마자 지하주차장 화장실에 들어갔다. 타일도 보았고 모르타르도 보았고 실리콘도 보았다. 타일은 튀어나오고 모르타르는 삐져나와 있었으며 실리콘은 색깔이나 내용이 그야말로 볼만하다. 마무리로 하는 것이 바로 실링작업인데 허허 참.
자랑하고 싶다. 아버지는 전역하시고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때의 군인들이 심심찮게 선물을 사가지고 온다. 온돌매트며 이불이며 보약 같은 것들. 그 분들은 아버지 덕분에 젊은 날 인생의 버릇을 잘 들였다는 이야기를 한결같이 하신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흙이 묻은 삽을 씻어 있던 자리에 놓아두어야 그 일이 끝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매사에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열흘 남짓이면 내년이다.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지만 모두 제대로 마무리하고 접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들 눈에는 내가 붙인 타일이 엉망일 수도 있지 않은가. 곰곰 생각해 보니 근성을 가지고 더 가야 할 일들이 많다. 양해하고 넘어간 일들과 적당히 합리화하면서 넘어간 것들 말이다. 내년에는 분발해야겠다. 품질이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마구 든다. 아듀 2013!
고선웅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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