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10대 뉴스를 선정해야 하는 시즌, 연말이다. 늘 느끼는 거지만, 1년을 반추하고 정리하는데 뉴스만큼 유용한 것도 없다. 흘러간 뉴스, 진행 중인 뉴스를 들여다 보면 우리가 부대끼며 헤쳐가고 있는 시간과 시대의 모습이 드러난다. 2013년은 과연 어떤 시대로 규정지어질까. 우리에게, 우리 사회에게 지난 1년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우리 삶은 전보다 나아졌을까. 아니면 최소한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거나, 적어도 내년부터는 나아지리라는 믿음과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을까.
매일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뉴스는 언뜻 상호연관성 없이 개별적으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뉴스들은 큰 맥락, 큰 덩어리를 이루며 흐르는 경우가 많다. 작은 뉴스, 짧은 뉴스라 해도 뉴스는 시대와 시절을 구성하고 추동하는 주의(主義)나 정신, 주장과 요구의 바탕 위에서 현상화한 것들이다. 그러니 수많은 뉴스를 추려서 나누고 묶고 하다 보면 우리 사회의 민 낯을 만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가감 없는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
언론과 뉴스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올해도 역시 갈등과 대립이 뉴스의 흐름을 주도했다. 1년 동안 뉴스를 구성한 핵심어만 추려봐도 그렇다. 장성택 처형,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내란 음모, 밀양 송전탑, 기초연금, 채동욱 파문, 재벌 수사, 인사 잡음, 성추문, 북한 핵실험 등 하나같이 충격적이고 가슴 답답한 내용들뿐이었다. 우리 사회가 이런 뉴스의 무게를 오롯이 감당해 온 것이 신기할 정도다.
안타까운 것은 뉴스의 홍수 속에서 대화 소통 이해 양보 관용 공존 협상과 같은, 이제는 미덕 아닌 미덕이 돼버린 말들이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점이다. 아니 올해 우리 사회에서는 그 말들의 존재감을 느낄 수조차 없었다. 대화와 소통을 해야 한다는 언론의 강조는 깨끗이 무시 당한 채 울림 없는 메아리가 되기 일쑤였다. 대신 소신과 원칙으로 포장된 일방주의, 이념과 지역 등으로 피아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행태,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 획일주의 등이 횡행했다. 상식과 순리, 이성과 합리는 거두절미 당했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 돼버렸다. 그러니 어느 누가 안녕했다고, 안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보수 정권이라도 합리성과 유연성을 갖춘다면 얼마든지 국민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외연을 확장해 갈 수 있다. 하지만 현 정권 내부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유연한 보수, 합리적 보수, 대안적 보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맹목과 맹종의 꽉 막힌 보수만 판치고 있다. 이러면 점점 독선과 독단, 오만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만 높아진다. 높은 지지율에 취해 있다가 한번의 패착으로 민심의 외면을 받은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국정원 대선 개입도 마찬가지다. 초반에 유감을 나타내고 투명ㆍ엄정하게 다루면 됐을 것을 '우리와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일파만파가 됐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를 웃돈다.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집권세력을 견제해야 할 민주당 등 야권이 무기력증을 앓는 사이 수시로 동원된 종북몰이와 대선 불복 프레임 등이 먹힌 결과라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이를 발판 삼아 보수 정권은 지지층 결집을 강화하고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가 너무 크고 뼈아프다. 우리 사회는 철저히 갈라지고 찢어졌다. 주변의 약하고 힘없는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로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대자보에 떡 하니 김정은 사진을 붙이고, 달은 보지 않은 채 자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문제 삼는 식으로 본질을 희석하고 회피하는 일이 무시로 벌어지는 곳, 그곳이 2013년 12월의 한국 사회다. 칼 포퍼가 말한 '열린 사회'의 실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열린 사회로 가기 위해 다양성을 인정하고 비판을 수용하며 문제를 개선해 가려는 노력 없이 매사 이런 식의 분열과 충돌이 계속된다면 2014년에도 우리는, 우리 사회는 결코 안녕할 수 없다. 우리는 정말 안녕하고 싶다.
황상진 편집국 부국장 apr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