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지방법원이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적 휴대전화 통화기록 정보수집 활동은 위헌이므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미국의 대외 정보사찰 사안을 다루는 '해외정보감시법원'(FISC) 소속이 아닌 연방 판사가 미국 정부의 대량 정보수집 활동에 제동을 건 첫 판결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국가 안보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항소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이행을 유보토록 했다.
워싱턴 지방법원의 리처드 리언 판사는 16일(현지시간) 시민단체 '프리덤워치' 설립자 래리 클레이먼 등이 'NSA의 정보 수집이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리언 판사는 "이번 사건처럼 조직적이고 첨단 기술을 동원한 정보수집보다 더 무차별적이고, 임의적인 사생활 침해를 상상할 수 없다"며 "정부는 휴대전화 통화기록 수집 활동을 중단하고 관련 자료를 파기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는 68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에서 NSA 프로그램이 위헌성을 갖고 있다고 언급한 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헌법 제정에 참여한 제임스 매디슨도 이 같은 정부의 사생활 침해를 보면 경악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이번 판결에 대한 항소 절차에 최소 6개월 이상 소요되는 데다 국가 안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항소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이행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NSA의 무차별적 정보 수집 관행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는 가운데 나온 이번 판결로 미국 내 사생활 보호 움직임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전직 CIA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 관련 자료를 폭로한 지난 6월 이후 NSA 프로그램에 반기를 든 첫 번째 합법적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미 정부는 수집된 개인 정보는 '메타데이터'(정보 유형이 숫자로 표시된 2차 정보) 라는 점을 들어 직접적인 개인의 사생활 침해에 해당되지 않으며, 개인 휴대전화 번호는 물론 통화 내용 등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불합리한 수색과 압수를 금지한 수정 헌법 4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즉각 항소할 것으로 보인다.
조지 H W 부시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데이비드 리브킨은 "(NSA 프로그램의 근거로 활용되는) 1979년 대법원 판례의 유효성을 따지는 판단은 지방법원에서 내릴 결정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1979년 미 대법원은 한 형사재판 피고인의 통화기록 정보수집은 수정 헌법 4조에서 규정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러시아에 망명 중인 스노든은 이번 판결에 환영을 뜻을 밝혔다. 스노든은 "나는 NSA의 무차별적 감시 프로그램이 위법이라는 믿음에 따라 행동했다"며 "미국 시민들은 공개 법정에서 이 이슈를 결정할 기회를 갖게 됐다"고 반겼다고 NSA 관련 의혹을 처음 폭로한 전 가디언 기자 글렌 그린월드가 전했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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