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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적 감상을 넘어… 깊은 이해와 공유의 장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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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적 감상을 넘어… 깊은 이해와 공유의 장 펼치다

입력
2013.12.1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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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일 작가·큐레이터 3년간 양국 오가며 도시·문화·역사 등 탐색생산적이고 날선 의견 교환… 기존의 경계 흐트려뜨러작가 홍보하는 영상이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작품들 물리적 합체도 새롭고 교차적 시선 통해 창조와 가능성의 세계 열어

국가 간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도구 중 하나가 예술이다. 오늘날 예술 교류는 국제 교류전, 작가 교환, 미술관 간 협약 체결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결과는 마뜩잖다. 전시 재활용은 그나마 양반이고 교환 과정에서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피상성을 극복하기 위해 작가들을 서로의 국가에 체류시켜 보지만 결과물에서 읽을 수 있는 건 낯선 문화를 접한 작가들의 '와, 신기해요'라는 환호가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14일 시작된 한국-독일 예술교류전 '트란스페어 한국-엔에르베(NRW)'는 반가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가 진행한 이 전시는 교류전으로는 드물게 3년이라는 긴 시간을 할애했다. 2011년 양국 전문가들이 작가 14명(한국, 독일 각 7명)을 선정하며 시작된 프로젝트는 양국의 작가, 큐레이터들이 만나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했다. 큐레이터가 상대국 작가를 만나는 것에 그쳤던 기존 전시와 달리 한국 큐레이터가 독일 큐레이터에게 한국 작가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한국 미술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기회가 주어졌고 반대의 과정도 이뤄졌다. 2012년에는 작가들이 상대방의 나라에 두 달씩 체류하면서 전시를 준비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올해 10월 독일의 본 미술관,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 오스트하우스 미술관 하겐에서 순차적으로 전시된 뒤 이달 14일부터 한국의 아르코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대안공간 루프에서 나뉘어 선보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전시에는 여느 교류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독일이 본 한국은 이렇구나' 라는 메시지를 속 시원하게 관객에게 전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오히려 피상적 교류에 대한 공격성이 희미하게 엿보인다. 루프는 정연두, 이수경, 함경아, 에리카 혹, 마누엘 그라프 등 5명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작품들을 물리적으로 합체시켰다. 주제의식이나 외형에서 전혀 공통분모가 없는 작품들을 한데 모은 풍경은 교류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를 거칠게 되묻는다.

그러나 "작품들을 강제로 합쳤다"는 서진석 루프 디렉터의 말과 달리 전시장은 평온하다. 에리카 혹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놓아둘 수 있는 선반 또는 전시장을 구획하는 파티션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마누엘 그라프는 다른 작가의 작업을 홍보하는 영상을 자신의 작품으로 삼기 때문이다. 김기라, 이수경의 조각은 에리카 혹의 선반 위에 놓여 매끈하게 합쳐졌고 이수경의 영상 작업은 에리카 혹의 반투명 파티션을 통해 3D 영상으로 거듭났다.

아르코미술관은 김기라, 나현, 원성원, 정연두, 얀 알버스, 마누엘 그라프, 루카 핀아이젠,젭 코베어슈테트 등 8명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교류의 산물인 교차비평을 전시장 곳곳에 작품으로 배치했다. 교차비평은 양국 큐레이터가 상대국 작가의 작품을 비평한 것이다. 연기자들이 방 안, 길 거리, 농촌 등 6개의 무대에서 연기하는 장면을 끊지 않고 한 컷으로 촬영한 정연두의 영상작업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에 대해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 큐레이터인 카트린 바루츠키는 "현실을 재현하는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을 알리는 작업"이라고 평했다. 이에 응수해 한국 독립 큐레이터 현시원은 에리카 혹의 선반과 파티션에 대해 "전시 공간과 구조물 사이의 긴장된 틈 사이를 탐험하는 과정"이라며 "기존 공간의 작동 방식과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마누엘 그라프, 함경아, 정승, 자샤 폴레, 유르겐 슈탁 등 5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깊은 만남이 늘 그렇듯 전시 준비 과정에는 갈등도 있었다. 독일은 너무 느리고 한국은 너무 빠르다는 게 문제였다. 전시 준비에 독일 미술관은 짧게는 1년, 보통은 2~3년이 걸리는 반면 한국은 공공미술기관조차 몇 달 안에 해치워 버리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은 미술관 큐레이터나 관장이 잘 바뀌지 않는 데 비해 한국 큐레이터는 대부분 계약직이고 행정, 예산 문제, 관장 교체 등 수많은 변수에 얽매여 있다는 것도 씁쓸한 차이점으로 지적됐다. "한국 큐레이터 양성기관은 미술학 같은 것보다 스트레스 해소법, 순발력과 인내력 향상을 교육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이 실무 현장에서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문화사무국 관계자의 푸념은 이번 교류전이 거둔 진정성 있는 수확물 중 하나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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