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제 시집이 그만 팔리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시인이 있다. 40년간 약 1,000편의 시를 썼고, 10권의 시집을 펴냈으며, 그 시집들이 모두 합쳐 500만부나 팔렸다. 하지만 인세 수입은 한 푼도 자기 몫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형용모순이 범람하는 이 서술들의 주어는 요새 '국민 이모'로 불리고 있다는 시인 이해인 수녀(68)다.
1976년 나온 첫 시집 를 시작으로 그가 43년간 써온 시들을 묶은 두 권짜리 이 문학사상사에서 발간됐다. 우리나이로 70세가 되는 고희(古稀)가 내년이라 권영민 문학사상 주간이 이를 기념해 제안했고, 두 권의 전집에는 총 800여편의 시와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사진 60점이 수록됐다. 이해인 수녀는 17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생애 첫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문학적 평가를 받기 합당한 문인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전집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며 "부끄럽다"고 말했다.
5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해온 그는 투병 사실이 착각이었나 싶게 건강한 활력과 유머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그의 시가 독자들에게 인기 있는 것은 "난해하지 않고 단순해서 마치 내가 쓴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며 실제 인터넷에는 그가 쓰지 않았는데도 그의 이름이 달린 시들도 약 40편 정도 돌아다닌다고. "수녀니까 고소는 안 하겠지, 만만하게 봤나?(웃음) 하지만 다 용서합니다. 시를 얼마나 좋아하면 그랬겠어요."
그는 "우울증에 빠진 암 환자들을 보며 내가 만일 암에 걸리면 명랑하게 이겨내야지 생각했었다"면서 "혹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아직 완치 판정은 못 받았지만 더 나빠지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일상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로서적이 있던 1980년대, 베스트셀러 순위 1위부터 4위까지 모두 제 이름으로 도배돼 있는 것을 보며 유명세의 혹독한 고통을 치렀어요. 훌륭한 작가가 얼마나 많은데 왜 제 시집들만 읽으실까, 이러다 수도 생활을 망치면 문학이 뭐가 되나, 괴로웠죠."
베스트셀러가 스테디셀러로 바뀌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는 그는 최근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동안도 인세 수입은 전부 수녀원으로 들어가 경리과 결제를 거쳐 비용을 받는 무소유의 삶을 살아왔지만, 사후 저작권 관리부터 인세ㆍ고료 수입까지 이 참에 깔끔하게 정리해뒀다. 수녀원 관례에 따라 극히 간소하게, 다른 수녀들과 똑같이 장례식을 치를 것까지 명기해놨다.
"저한테는 이제 주민등록증 하나밖에 없어요. 일일이 경리과에서 교통비를 받아 써야 하고, 기부를 해도 재단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봉사의 허영심, 성취감도 포기하는 가난이 인간적으로 어렵기는 하지만 굉장히 마음이 홀가분해요. 이승에서의 여정 마치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쪽 나라로 이사만 가면 되는구나 싶어서요."
스스로 지은 필명이 불교적 색채가 짙어 '해인스님'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는 그는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집이 안 팔리는 게 너무 슬프다"면서 "커피 한 잔 값, 택시비 좀 아껴서 시집 좀 사서 읽어달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