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들의 꿈평균 50대… 90%가 여성, 개인 사무실에 기사 딸린 차명예임원으로 주요행사 참석… 연 소득 1억2000만원 훌쩍불법 리베이트 유혹에 취약고소득자 일수록 실적 압박수개월치 보험료 대납해 주고 수수료나 해외여행 보내줘비서들 불완전판매도 문제
대형 생명보험사 A생명의 보험설계사(FP) 김모(48)씨는 관리고객이 3,000명이 넘는다. 입사한 지 18년 된 김씨의 연간 수입은 5억원 안팎. 월평균 10건 이상 보험계약을 따내 1년 신규계약이 200여건에 달한다. 김씨는 A사에서 수입보험료 등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보험왕'에 다섯 번이나 뽑혔다. 명예임원이 된 그는 회사로부터 개인사무실을 지원받고 매월 100여만원의 지원금도 추가로 받고 있다. 보험업계에는 김씨처럼 억대 연봉을 받는 보험설계사가 국내에 1만명이 넘는다.
국내 대형 보험사인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보험왕'이 고액보험 가입고객에게 과도한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억대 연봉 보험설계사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형 생명보험사들은 '수입보험료 기준 100억원 이상, 계약유지율 13회차 이상 90%이상' 등의 기준으로 매년 보험왕을 선발한다. 보험왕의 평균연령은 50대 초반, 이중 90%이상이 여성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왕들의 1인당 평균 매출은 70억~100억원에 달한다"며 "주로 상을 탔던 보험왕들이 연속 수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고소득 보험설계사 모임인 한국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ㆍ백만불 원탁회의)협회 회원 수도 지난해 2,472명에 달했다. 회원으로 인증 받으려면 연간 수입보험료가 1억8,000만원 이상이거나 연간 신계약 수수료가 7,20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 이 경우 연소득은 1억2,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보험왕이 되면 개인사무실, 기사가 딸린 승용차 등이 제공된다. 보험왕 출신 한 보험설계사는 "경제적 혜택보다는 보이지 않는 신뢰가 더 큰 재산"이라면서 "인맥이 중요한 이 분야에서 일단 보험왕으로 뽑히면 고객들의 신뢰가 높아지고, 강연이나 행사 초청이 늘어 고객모집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처럼 보험왕에게 주어지는 특전이 많다 보니, 불법 리베이트 유혹에 쉽게 빠진다. 한 고액 연봉 보험설계사는 "하다 못해 월 10만원짜리 보험에 가입해도 상품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1억원 이상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오죽하겠느냐"며 거절하면 다른 보험설계사에 들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수수료에서 떼서 준다"고 밝혔다. 억대 고액보험에 가입하면 2~6개월 치 보험료를 설계사가 자비로 대주거나,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실적을 늘리기 위해 편법도 쓴다. 예컨대 친한 영업직원이 있는 자동차 영업지점에 자동차보험 청약서를 가져다 둔 뒤 설계사 자격증도 없는 영업직원이 고객에 보험을 권유하도록 해 고객이 보험에 가입하면 수수료 일부를 영업직원과 나누는 식이다. 보험왕들이 고용하고 있는 2~4명의 개인비서들도 편법 불완전판매에 동원되기 일쑤다. 업계 관계자는 "연간 300건 이상 하는 보험왕들이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개인비서들이 자필서명, 청약서 전달 등 보험판매업무를 보조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보험왕 스캔들을 계기로 리베이트 처벌을 강화하고, 실적위주의 과도한 출혈경쟁을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손교욱 MDRT협회 회장은 "리베이트를 주고 받은 설계사와 고객, 회사에 대한 처벌을 현행 주의수준에서 더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오세중 대한보험인협회 대표는 "각 사별로 특화된 상품 없이 엇비슷한 상품을 놓고 경쟁을 하다 보니 사은품이나 리베이트를 많이 주는 상품이 잘 팔릴 수밖에 없다"며 "이번 사건은 한국 보험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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