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패의 예술인들을 안다. 친한 건 아니고 아주 모른다고 하기는 조금 섭섭하게 여겨도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만 아는데, 그들이 동아리를 짓는 자리에 철에 한 번씩 또는 해에 한 번씩 끼게 되는 건, 십중팔구 먹는 게 쏠쏠히 빌미가 돼 줄 때의 일이다. 그건 통영 언덕바지에서 삶은 콩국수이거나, 가평의 화목난로에 구운 꽁치이거나, 안성 텃밭에서 딴 고추장아찌거나, 그랬다.
도저히 갑근세 납부자로 봐주기 힘든 부류의 봉급쟁이도 한둘 예외로 섞여 있지만 대부분, 멤버는 전업 문인이다. 돈과의 인연이 희박하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그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는 모습은 번지르르한 미식의 도락에서 한참 멀다. 사위성에서 탁발해온 것을 기원정사 바닥에 앉아 나눠 먹던 싯다르타의 아침이 차라리 가까울 것이다. 소박하고, 벅차도록 따뜻한 식사의 풍경이다.
그 패에서 늘 공양주 보살 노릇을 하는 시인의 식탁 얘기다.
"난 사실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친구들이, 우리 집 와서 얻어 먹으려고, 알랑거리는 말로 '은이 잘 한다' 그러는데 진짜 안 좋아해요. 내가 안동에서 자랐거든요. 명절 때면 사촌, 육촌에 며느리 포함 30명씩 왔어요. 한 끼만 먹고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그리구요 난, 사람이 너무 미각을 발달시키는 게 옳은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예컨대 쇠고기도 최고로 맛있는 부위만 먹으려고 하니까, 그 부위를 얻기 위해 훨씬 많은 소가 죽어야 하잖아요. 아 참, 근데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려나? 음식 얘기 들으러 왔댔는데…."
조은(53) 시인은 서울 사직동에 산다. 집은 열네 평 한옥인데 두 칸 방을 하나로 터서 침실 겸 서재 겸 응접실로 쓴다. 밥 한 끼 달라고 쳐들어간 방은 수도원의 다락방처럼 검박했고 또 옛 주막의 봉놋방인 듯 푸근했다. 그래서 무척 좁고도 무한히 넓은 그 방에 오래된 서안(書案)이 하나 놓여 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그 앉은뱅이 책상은 손님이, 비록 불청객이라도, 찾아오면 식탁이 된다. 소설가 오정희 선생이 얼마 전 직접 농사 지어 보내준 들기름이 마침 있다며, 시인은 냄비에 곤드레밥을 짓고 여행길에서 사온 나물을 무쳤다.
시인이 음식 만드는 걸 정말 싫어한다는 사실과 시인에게 음식을 해달라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 사이에서, 시인은 번번이 졌다. 기꺼이 졌다기보다 할 수 없어서 졌을 것이다. 된장찌개에 나물밥을 비벼 달게 씹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죽는 순간까지 주인을 무는 개를 20년 가까이, 시인이 "다른 사람이 절대로 키울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데리고 같이 살았던" 이유와 같은 게 아닐까. 뱃속의 허기를 핑계 삼아 찾아온 벗들의 눈빛 속의 더 큰 허기를 외면하고도, 편히 잠자리에 들 만큼 야멸찬 강단이 시인에겐 도통 없어 보였다.
"우리 집 부엌은 퉁풍이 안 돼 겨울엔 너무 춥고 여름엔 너무 덥고…. 근데 이 인간들이 봄만 되면 벌써 냉면 먹고 싶다는 사인을 보내는 거에요. 지들끼리 '(조)은표 냉면이 최곤데, 너도 먹어봐야 하는데…' 그러면서. 정작 난 냉면 한 번 만들고 나면 한증막 갔다 온 것 같은데. 매운 걸 버무려야 하는 데다 솥도 작아서 눌어붙지 않게 삶으려면 계속 저어줘야 하니까요. 그래도 잘 먹는 것 보면 보람이 영 없지는 않지만."
그런데 사직동 시인의 낮은 식탁에서 밥을 먹는 시간이 이제 끝나간다. 시인의 집을 둘러싼 일곱 집 가운데 여섯 집이 이미 빈 집이다. 내년 이 동네는 재개발을 위한 철거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토록 밥 하는 게 싫다는 시인은 그런데, 떠나기 전 집 앞 골목에서 벗들을 모두 모아 놓고 걸지게 잔치 한판 벌일 생각을 다지고 있었다. 옆 집에서 버리고 간 연탄 화덕에다 전 지지고 국수 삶고 잡채도 할 계획이란다. 2014년 모월 모일, 영 섭섭지만은 않을 어떤 이별의 모습을 사직동 골목에서 목격할 수 있을 것 같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건…
조은 시인은 아픈 개와 함께한 17년의 이야기를 최근 산문집 (로도스 발행)로 펴냈다. 밥을 얻어 먹으러 간 날, 그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주면서 들려준 얘기의 그림자가 길었다.
"고양이도 기르셨어요?"
"아뇨. 길고양이한테 밥을 주는 일도 없었고요."
"왜요?"
"또또랑은 달리 내가 끝까지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니까. 그래서 우리 집에 오는 고양이들한테도 부러 밥을 안 줬어요."
"근데 이제 왜…?"
"위험한 상황에서 개들은 밖으로 튀어 나오는데 고양이는 안으로 숨는 습성이 있대요. 그래서 재개발 지역의 고양이는 대부분 깔려 죽는대요. 철거가 결정된 2년 전부터 밥을 주기 시작했어요. 어차피 내가 여길 떠나게 될 때, 그때가 얘들에게도 마지막이 될 테니까. 모른 체했던 20년보다 주고 산 2년이 훨씬 편하네요. 이리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부터 돌봐주는 건데…."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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