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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2월 16일] 루산과 삼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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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2월 16일] 루산과 삼지연

입력
2013.12.1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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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시성 루산(廬山)은 소동파와 이백, 도연명 등 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만큼 천혜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진면목(眞面目)'이란 말은 소동파가 루산의 절경을 노래한 칠언절구에서 유래됐다. 국민당 장제스와 부인 쑹메이링은 매년 여름 루산의 아름다운 석조 주택에 머물렀다. 장제스가 대만으로 피신하자 그 집은 마오쩌둥의 차지가 됐다. 그도 장제스만큼이나 루산을 좋아했다. 1년에 200일 정도 피어 오르는 안개 속 정자에 앉아 시를 읊었다.

■ 마오는 1959년 여름 대장정의 영웅들을 루산으로 불렀다. 대약진운동을 비판한 국방부장 펑더화이를 숙청하기 위한 계략이었다. 펑더화이가 토론에서 문제점을 지적하자 "여러분이 나를 따르지 않으면 시골로 내려가 농민들을 이끌고 정부를 전복시키겠다"고 협박했다. 회의장에는 냉기가 돌았다. 한국전쟁 때 인해전술의 주인공인 펑더화이는 바로 실각됐고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이어졌다. 1970년 마오는 루산에 동료들을 다시 한 번 불러모았다. 이번 표적은 2인자인 린뱌오였다. 이를 눈치챈 린은 "마오는 수백 년에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며 '위인론'을 내놓았으나 이미 늦었다.

■ 1956년 북한 내 연안파와 소련파는 김일성의 소련 방문을 틈타 쿠데타를 모의했다. 그러나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김일성은 급히 귀국해 이들을 종파분자로 규정하고 숙청했다. 당시 10대인 김정일은 사건 직후 '백두 혈통'의 성지인 삼지연(三池淵)을 찾았다. 김일성이 일제 때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백두산 일대에 건설한 밀영이 있는 삼지연은 주체혁명의 본산이다. 김정일은 그때부터 어려움에 처할 때면 삼지연으로 향했다.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장성택 숙청을 전후해 삼지연에 머무른 사실이 확인됐다. 노동신문은 '삼지연의 강행군길이여!'란 제목의 글에서 "대를 이어 계속되는 혁명에는 자기의 근본이 있고 혈통이 있다"고 보도했다. 산을 타기 쉽지 않은 초겨울이란 점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발자취를 밟으며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 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2인자 숙청은 수법부터 상징적 공간 활용까지 마오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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