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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역사만큼 재미있는 주방용품의 역사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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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역사만큼 재미있는 주방용품의 역사속으로

입력
2013.12.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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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주방용품 매장 한 켠의 '만능 다지기' 시연에 발길 멈춰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 책에도 시간을 뺏길 가능성이 높다. 허기를 채우는 것에서 시작해 혀를 유혹하는 단계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요리는 그것을 애초에 가능하게 하는, 예를 들어 불을 피우고 다루는 것 같은 기초적인 기술에서부터 좀 더 빠르고 편하게 할 수 있게 만드는 갖은 도구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국의 음식 칼럼니스트가 쓴 이 책은 그런 부엌 도구와 기술의 역사를 냄비와 팬으로 시작해, 칼, 불, 계량, 갈기, 먹기, 얼음, 부엌으로 나누어 재미있게 설명한다. 음식문화란 근본적으로 지역마다 다른 것이어서 중국 칼을 소개하거나 한국과 일본의 밥솥 문화를 다루는 일부 대목을 제외하면 저자의 이야기는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에 한정된 것이다.

저자가 다루는 주제들 중 인류사의 시각으로 보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불이다. 하지만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불이 가져온 인간의 진화가 아니다. 이런 주제는 처럼 다른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대신 저자는 부엌에서 불을 사용하는 중요한 작업이면서, 누군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야 한다"고 말했던 '로스팅' 기술이라든지, 부엌에서 불 사용에 혁명을 가져온 가스불 기술 도입이나 전자레인지의 발명 등을 이야기한다. '팬과 냄비'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저자는 우리가 먹을 것을 입에 넣겠다는 일념으로 어떻게 불과 얼음을 다스렸는지, 거품기와 숟가락과 강판과 절굿공이를 휘둘렀는지를 들려준다.

하지만 이런 일종의 잡학으로 일관했더라면 이 책이 영국의 몇몇 신문들이 꼽은 지난해 최고의 책이라는 명성을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이런저런 주방도구 없이도 얼마든지 요리는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편리함을 위해 그런 도구를 계발하는 욕구가 존재하고 그 결과로 부엌이, 식습관이 바뀌어 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가 한 시점에 소유한 도구들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반드시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고 삶을 더 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역사학자들은 '192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여성들이 요리를 포함해 가사에 들이는 시간이 늘 일정하다는 역설'을 환기시켰다. 전자레인지에 냉장고, 식기세척기, 믹서, 음식물 찌꺼기 분쇄기가 생겼는데 왜 여성들의 노동량은 줄지 않았을까. 저자는 믹서를 쓰면 대단히 쉽고 빠르게 케이크를 만들 수 있게 되고 그래서 그때까지 사 먹던 케이크를 꼭 만들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게다가 조리대 공간은 좁아지고 컵과 부속을 씻는 시간, 믹서가 사방에 흩뿌린 밀가루 훔치는 시간을 쓰게 된다.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대개의 부엌들은 실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는 지적도 새삼스럽다. 그는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숙련된 요리사는 날이 선 칼, 나무 도마, 숟가락, 모종의 열원 등만 가지고도 그럭저럭 요리를 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법랑냄비를 졸업하고 르쿠르제 냄비를 크기대로 하나씩 사모아 진열해 놓고 흐뭇해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그래서 그럴까. 읽고 나면 왠지 허전하다. 저자가 말하듯 이런 부엌용품의 역사는 음식의 역사에 비하면 하찮은 것일 수밖에 없고, 상차림과 젤리 틀은 인간의 기본적인 허기라는 주제와는 애초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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