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혁신이 풀어야 할 숙제다"
포르투갈이 낳은 위대한 건축가 알바루 시자는 옛 것과 최근의 것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 끝에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의 애매모호한 말은 '시자 이후 세대' 건축가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포르투갈 도시와 농촌의 풍경을 수놓고 있다.
포르투갈의 현대 건축을 엿볼 수 있는 전시 '불안: 포르투갈적 표현 양식들' 전이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시자가 직접 설계해 화제가 됐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주한 포르투갈 대사관과 연계해 포르투갈의 현대 건축, 조각, 회화, 드로잉, 영상 작업을 아우르는 전시를 내년 2월 9일까지 선보이기로 했다.
1층에서 열리는 건축전에서는 포르투갈 현지의 건축 사무소 8곳이 최근에 진행한 작업을 설명하는 인터뷰 영상과 건축물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가정집, 박물관, 중학교, 구름다리 등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맡았던 이들이 공통적으로 떠안았던 고민은 전통과 혁신의 조화다. 해외 영토 확장의 황금기인 16세기에 만개했던 마누엘 양식의 흔적, 1974년 민주화 혁명 이후 급하게 지어졌던 가설 학교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계속되는 지독한 재정위기. 전시는 건축가들이 이 같은 불안 요소들을 이용하거나 뿌리 뽑거나 재구성하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2007년 리스본에 지어진 동 디니스 중등학교는 포르투갈 교육청의 '중등학교 개축 및 현대화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포르투갈의 중등학교 대다수는 74년 4월 25일 독재정권 전복 이후 중등학교가 의무 교육으로 지정되면서 단기간에 지어진 가설 학교들이다. 문제는 갑자기 많은 수의 학교를 짓느라 지역별 특성이나 건물의 배치를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는 것. 이 프로젝트를 맡은 히카르두 바크 고르동은 동 디니스 중등학교를 이루는 가설 건물 다섯 채를 살펴본 후 건물들 가운데 있는 공터에 모든 건물을 연결하는 새 구조물을 짓기로 했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새 건물은 기존의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단순한 직선들로 이뤄진 건물동에 개성을 더하는 역할을 했다.
자연과의 조화가 숙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주앙 루이스 카힐류 다 그라사가 2010년 카르핀테이라 강에 설계한 구름다리는 도시 중심과 외곽의 도보 거리를 줄이기 위해 추진됐다. 카르핀테이라 골짜기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높은 세하다 이스트렐라 산과 거대한 골짜기인 코바 다 베이라를 잇는 아주 특별한 장소다. 다 그라사는 225m 길이의 교량 상판을 50m 높이의 교각 2개로 떠받치는 파이(π) 모양의 기하학적 다리를 구상했다.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다리 2개를 추가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그는 돌출물이 나선형으로 감겨 있는 다리를 만들어 식물이 타고 올라가도록 했다. 2개의 보조 다리는 곧 덩굴에 가려져 존재감을 잃었고 백색의 파이만 공중에 떠 있는 풍경이 완성됐다. 손꼽히는 자연 절경을 지극히 인위적인 형태의 다리로 가로지르는 모험은 이 지역을 새로운 랜드마크로 만들었다.
리스본의 디자인∙패션 박물관은 재활용을 키워드로 한다. 2009년 리스본 시 당국은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옛 국립해외은행(BNU) 건물을 박물관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건물의 소유권이 시청으로 넘어오기 전이었고, 박물관은 보수 공사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작품을 전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설계를 맡은 히카르두 카르발류와 주아나 빌례나는 은행의 카운터를 그대로 두는 방법을 택했다. 구불구불하게 형성된 카운터 안쪽에 작품을 전시하고 빛이 나는 라이트 스크린을 설치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벽과 천정은 기존 건물의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최소한의 개입만으로 은행을 박물관으로 변신시킨 이 프로젝트는 현대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카르발류는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은 앞으로 점점 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열악한 재정을 바탕으로 기존 건물을 재활용하는 작업을 더 자주 하게 될 것입니다."
건축을 통해 본 포르투갈의 다양한 풍경은 전시에 참여한 건축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알바루 시자의 건물 안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시자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설계하면서 모든 벽을 이중으로 설계해 콘센트와 냉∙난방기 등을 완전히 감춰 버렸다. 결벽적인 백색 공간은 천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을 받아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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