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영화 ‘오래된 인력거’(2011)를 연출한 이성규 감독이 13일 오전 2시 20분 별세했다. 향년 50세.
지난 5월 간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던 이 감독은 그의 독립영화 ‘시바 이생을 던져’의 개봉을 불과 엿새 앞두고 세상을 떠나 영화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연극배우를 거쳐 독립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오랜 기간 활동한 이 감독은 첫 다큐멘터리영화 ‘오래된 인력거’로 이름을 알렸다. 몸 하나로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한 인도 인력거꾼의 삶을 좇는 이 영화는 2010년 국내 최초로 세계 최고 권위의 암스테르담다큐멘터리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하지만 고인의 이름은 여전히 대중에게 낯설었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영화감독보다 독립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의 권익 옹호에 힘쓴 인물로 더 알려졌다”고 회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에게 고인의 이름이 알려진 계기는 지난 5월 간암 4기 판정을 받고서다.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두고 갑작스레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된 그는 의연했다. 생에 대한 무리한 의지와 병마를 향한 분노를 표출하기보다 죽음을 긍정했다. 그의 담담한 태도는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로 잘 표현돼 대중의 마음을 적셨다.
이 감독은 병상에서 쓴 글들을 ‘와유록(臥遊錄)’이라 칭했다. ‘병상에 누워 여행한 기록’이란 의미로 인도와 네팔 등 세상을 주유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자신의 삶을 빗댔다. “여행과 와병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한다는 것. 아직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인간에게 죽음이 두려운 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과정일 겁니다. 죽음의 과정이 내게 축제일 수 있게 도와주세요. 나는 축제현장에서 놀고 있어요. 재미나게 놀고 싶어요. 그리고 ‘안녕’이라 남들에게 인사하고 싶어요” 등의 글이었다.
고인은 지난달 30일 항암치료를 하던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퇴원해 강원 춘천시의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길 때 페이스북에 남은 인생을 정리하듯 이같이 글을 남겼다. “단지 인정할 건 인정하고 존엄하게 삶을 정리하고 싶을 뿐입니다. 무슨 치료가 좋다더라… 식의 이야길 하지 말아주시길. 저는 제 가족과 함께 마지막을 추억하며, 존엄하게 이승의 삶을 정리할 겁니다.”
이 감독의 병세가 깊어지자 영화인들과 지인들은 지난 11일 춘천의 한 극장을 빌려 그의 첫 장편 극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의 특별 상영회를 열었다. 고인은 6일 마지막 와유록을 남겼다. “춘천 호스피스 병실에서의 일상은 지극히 평안합니다. 죽음을 맞는 내겐 평화의 터가 됩니다.” 장례는 한국독립PD협회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강원대병원 2호실. (033) 258-9402. 발인 15일 오전 8시.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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