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게 그닥 없는데,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게 사진을 찍는 거다. 엊그제는 그동안 찍어서 남 몰래 보관해온 사진 파일들을 열어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내가 찍어서 보관하고 있는 사진은 사람을 찍은 것과 동물을 찍은 것, 그리고 날씨를 찍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람과 동물과 날씨라니, 좀 막연하긴 하지만 사실상 삶을 구성하는 가장 역동적인 것들이 아닌가 싶다. 나참, 이렇게 단순하다니. 나는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내 안에 살고 있는 생명은 동물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들, 예컨대 나무나 식물이나 건물 같은 것을 관찰하는 일은 아직은 내게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나만의 편견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보통 움직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 좀더 성숙한 태도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코끼리나 기린이나 타조처럼 이상하게 생긴 동물에 열광하지만 노인들은 더 이상 코끼리 따위에 열광하지 않는 것이 그 증거다. 삶을 치러낸 노인들은 선인장이나 난초 같은 것을 쓰다듬는다. 이런 일은 왜 생기는 것일까. 언젠가 나 역시 고양이보다 선인장이 편하고, 강아지보다 벤자민이 편해질 날이 있을까. 카메라 렌즈가 나무의 속살을 향하게 될 날이. 식물과 대화하게 될 그런 날이.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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