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43)씨는 최근 '일전에 상담 드린 XX금융입니다, 무조건 1,000만원 대출 가능합니다'라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평소 같으면 스팸문자라고 생각했겠지만 지난달 전세 대출 문제로 XX은행을 찾았기 때문에 박씨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용대출을 받을 경우 1,500만원에 연5.9% 금리가 가능하다"는 답을 듣고 바로 통장사본, 신분증사본 등을 팩스로 송부했다. 하지만 그 후 대출이 어렵다며 저축은행을 소개해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XX은행이 아니라 알고 보니 대출모집인이었다"며 "처음부터 알았다면 개인정보를 주지 않고 은행으로 가 상담 받았을 것"이라고 불쾌해 했다.
상당수 대출모집인이 유명 금융사를 사칭하며 고리 대출상품 불완전 판매를 일삼아오다 급기야 은행권 사상 최대인 개인정보 13만건 유출로 검찰 수사(한국일보 12일자)까지 받게 됐다. 하지만 대출모집인을 관리ㆍ감독할 법규도 없는 실정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출모집인제도는 1996년 한국씨티은행에서 처음 도입한 이후 낮은 비용으로 대출실적을 올릴 수 있어 현재 대부분의 금융사에서 채택하고 있다. 2004년 말 2,009명에 불과했던 모집인수는 올 6월 현재 은행 6,409명, 저축은행 3,953명 등 1만8,985명이 활동하고 있다. 실적도 올 상반기에만 31조979억을 모집해 3,025억원의 수수료를 가져갔다. 대출모집인은 금융사와 계약을 맺고 대출자를 알선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16개 시중은행 가운데 한국씨티은행과 SC은행이 유독 모집인 의존도가 높은데 올해 상반기 동안 모집인을 통해 신용대출 실적 8,171억원과 6,856억원을 각각 기록할 정도다. 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의 경우 대출모집인을 통해 전국적 영업망을 구축할 정도"라며 "하지만 이들이 알선한 신용대출은 대출사고와 연체율, 불완전 판매가 높은 편이라 은행들은 차츰 축소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출모집인은 성과급에 의지하기 때문에 영세 모집인들의 경우 ▦다단계 방식의 대출 ▦허위명칭ㆍ과장광고 ▦개인정보 오남용 등 각종 불법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캐피탈 업계 관계자는 "개인정보가 있어야 대출소개 문자가 가능하기에 모집인들은 개인정보 확보에 사활을 건다. 이번 은행권 13만건 개인정보도 유출도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출모집인은 금융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당국의 인ㆍ허가 없이 금융업협회에 등록만 하면 영업이 가능하다. 금융감독원은 이들을 관리할 목적으로 ▦한 모집인 한 금융사 상품 연결 ▦광고 사전승인 의무화 등을 담은 '대출모집인제도 모범규준'을 2010년 만들었지만 법적인 강제력이 없어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11년부터 올 6월 현재까지 대출모집인에 대한 등록취소 건수는 214건에 불과한데, 이 마저 불법행위와 관련된 것은 99건에 그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출모집인 모범규준을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금융소비자법에 반영해놨기 때문에 앞으론 대출관리인도 당국에서 감독할 수 있다"며 "다만 법안 통과 기간 동안은 금융사 내부통제 강화와 함께 당국도 자주 점검에 나서 모집인의 불건전 영업행위가 없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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