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얻는 겨울철 생활의 지혜. 더러는 캡슐에 담아 약국에서 파는 것보다 부엌 냄비에서 끓고 있는 게 약효가 좋다. 우리만 알고 있었던 사실이 아닌가 보다. 한국에 고춧가루 넣고 끓인 콩나물국이 있다면, 서양에서는 향신료를 넣고 뭉근하게 끓인 술을 마신다. 연말을 앞둔 요즘 유럽 어딜 가봐도 길거리에서 이런 술을 파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와인', 또는 '애프터 스키(After Ski) 드링크'로 불린다. 추위를 쫓는 데 그만이어서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약처럼 마시기도 한다.
집에서 마시다가 남기는 술이 많아지는 시즌, 버리자니 아깝고 뒀다가 마시자니 거시기한 술을 모아서 따끈하고 특별한 크리스마스 음료를 만들어 보자.
글뤼바인
가장 유명한 겨울 음료다. 글뤼바인(Glühweinㆍ독일어권), 뱅쇼(Vin Chaudㆍ불어권), 또는 멀드와인(Mulled Wineㆍ영어권).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따뜻하게 데워서 마시는 레드와인이라는 점에서 기본은 똑같다. 500여 년 전 겨울 추위가 혹독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방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다는 유래가 정설로 통한다. 그러니 독일어 명칭을 쓰도록 하자.
구글로 제조법을 찾아보면 'dead simple(죽도록 쉬운)' 'less than 20 minutes(만드는 시간 20분 미만)' 같은 문구가 꼭 붙어 있다.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다. 레몬과 시나몬 스틱, 정향이 기본 재료지만 기호에 따라 다른 과일과 향신료를 쓸 수도 있다. 정향은 열대지방의 꽃봉오리를 말린 것으로 달콤하면서 상쾌한 맛을 낸다. 백화점이나 마트의 수입품 코너에서 'clove'라고 씌어 있는 것이다.
▲ 준비물: 레드와인 1병, 레몬 또는 오렌지 1개, 시나몬 스틱 4개. 정향, 아니스, 설탕 적당량.
1. 레드와인은 드라이한 것을 준비한다. 까베르네 쇼비뇽, 진판델, 멜롯 품종이 적당. 단맛이 강한 와인을 쓸 때는 설탕의 양을 줄인다.
2. 과일은 흰색 속껍질을 완전히 벗겨내고 쓴다. 속껍질이 남아 있으면 쓴맛이 강해진다.
3. 냄비에 준비한 재료를 넣고 끓인다. 기포가 오르면 불을 줄여서 20분 정도 뭉근하게 더 끓여 낸다.
핫토디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의 겨울 술로 9월만 되면 햇볕 구경하기 힘든 이 지방 사람들의 원기를 북돋워주던 '보양 칵테일'이다. 피로를 푸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 제조법을 기억해 뒀다가 사계절 마셔도 좋다. 들큰한 향이 강해 글뤼바인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핫토디의 깔끔함이 더 좋은 선택일 듯. 알코올 도수는 글뤼바인보다 훨씬 높으니 같은 양을 마실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토디는 술에 설탕과 레몬을 넣고 물을 섞어 마시는 칵테일을 뜻한다. 따뜻한 물을 섞으면 핫토디. 홍차를 쓸 수도 있다. 위스키를 기본으로 쓰지만 취향에 따라 럼이나 브랜드, 진을 대신 써도 된다. 핫토디에도 정향이 주요한 재료로 쓰인다. 한방에선 입 냄새를 없애주고 위를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 준비물: 위스키 스트레이트 잔으로 1잔, 물 1컵. 꿀, 레몬(또는 레몬주스), 설탕 적당량.
1. 위스키를 80℃ 정도의 물, 또는 홍차와 1대 2 정도의 비율로 섞는다.
2. 꿀과 레몬, 정향을 넣고 젓는다. 시나몬 스틱을 잔에 꽂아 내놓는다.
그라파
밀라노나 베니스 같은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한 적 있다면 밥 먹고 난 뒤 한 번쯤 마셔봤을 술이 그라파다. 우리로 치면 막걸리쯤 된다. 와이너리에서 포도를 압착해 와인으로 만들 액을 취하고 난 뒤 남아 있는 술지개미를 기본 재료로 만든 브랜디다. 색깔은 없지만 맛이 무척 강하면서도 달콤하다. 그래서 식후 술로 많이 마시는데 알코올 도수가 40~60도나 되기 때문에 금세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앉은뱅이 술.
숙성된 그라파는 상온(16~18℃)에서 마셔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겨울에는 따뜻하게 마시는 방법도 있다. 그라파에 우유와 꿀을 섞어 환자에게 주는 것이 이탈리아에서는 초기 감기를 치료하는 민간요법이다. 만드는 법은 역시 간단하다.
▲ 준비물: 우유 1컵, 그라파 스트레이트 잔으로 1잔. 꿀, 시나몬 스틱, 계피가루 등 적당량.
1. 우유를 중탕해서 데운다. 시나몬 스틱이나 레몬, 커피, 계피 가루 등을 넣어도 된다.
2. 우유가 데워지면 그라파와 꿀을 넣어 섞어 마신다.
3. 우유를 싫어한다면 설탕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라파, 에스프레소 샷, 레몬 껍질, 계피 조각 등을 그릇에 담고 불을 붙인 뒤 설탕이 녹으면 따뜻하게 마시면 된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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