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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2월 13일] 누가 도끼를 가져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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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2월 13일] 누가 도끼를 가져갔는가

입력
2013.12.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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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식구들을 차 뒷자리에 태우고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분당의 어느 공원 옆을 지나가는데 골목에서 고급 승용차가 불쑥 나와 내 차의 뒷문을 들이받았다. 살짝 받혔기에 뒷자리에 탄 식구들이 잘 모를 정도였지만 엄연히 사고는 사고였다. 운전하다 처음 당한 사고였기에 깜짝 놀라 머릿속은 허옇게 되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허둥지둥 차를 빼내 길가에 주차시키고 내려서 보니 우리 차를 받은 승용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사고 직후 차를 움직여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시켰다고 주변에 얘기했다가 비웃음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승용차를 보고 있노라니 조수석에서 남자가 내려 걸어왔다. 그가 먼저 말했다. "무조건 저희 잘못입니다."라는 첫마디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고처리의 순서나 방법도 모르겠는데 상대방이 자기 잘못이라고 먼저 인정하다니 다행이었다. 그러면서 "보험사를 부르시지요."하길래 그제서야 보험사 전화번호를 부랴부랴 찾았다. 30여 분 후에 온다고 하는 보험사 차를 기다리는데 운전자는 보이지 않아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내 눈치를 살피던 조수석의 남자가 설명했다. "운전은 형수님이 하셨구요. 저는 시동생입니다. 형수님께서 너무 놀라 내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라고 하였다.

두 보험사 차량이 얼마쯤 뒤에 도착했고 보험사 직원끼리 함께 조사하고 의견을 조율한 후 서류를 작성하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꽤 지났다. 경미한 사고인데다 전적으로 자기들 책임이라는 시동생의 말에 상황은 복잡하지 않았지만 시간은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때까지 운전자는 얼굴을 비치지 않았고 시동생이 모든 걸 해결하고 있었는데, 시동생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이 살짝 특이할 뿐 그의 일 처리는 능숙하고 무리가 없었다. 차를 몰고 집으로 가면 보험사에서 렌터카를 보내 준다고 해 집으로 출발하려 했는데 그 때까지도 운전자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운전하고 오는 길에 불현듯 그 차가 나온 골목이 모텔촌인데다 운전자는 나오지도 않고 조수석에서 나온 그 사람은 왜 굳이 말끝마다 시동생이라고 강조했을까 궁금해졌다. 그러자 그자의 능란한 말솜씨와 갸름한 턱 선과 호리호리한 몸까지 모두 의심이 갔다.

그들을 불륜커플로 단정하자 이젠 억울했다. 한 몫(?) 잡을 수 있었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자가 시동생이라 한 것은 운전석의 여인과 성이 다르니 친동생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이고 조카나 삼촌도 이상하다는 생각 때문 일까.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불륜커플이라는 내 의심이 맞다 해도 뻔한 접촉사고 수습조차 쩔쩔매는 주제에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이며, 또 두 사람을 다그쳐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부질없는 의심, 해결할 수 없는 의혹 또는 알아봐야 소용없는 일에 대한 집착 따위는 멀리 하고 눈앞의 일에 충실 하는 것이 몸과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게 오늘의 결론이다.

중국 고대 철학서인 에 '실부의린(失斧疑隣)'이란 말이 나온다. 도끼를 잃고 이웃사람을 의심한다는 내용이다. 어떤 사람이 도끼 한 자루를 잃어버리고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하자 이웃집 젊은이를 의심하게 되었는데, 유심히 살피니 그 걷는 모습, 안색, 하는 말이 모두 의심스러웠다. 이튿날 산에 갔다가 거기서 잃었던 도끼를 찾은 후 이웃집 청년을 다시 보니까 동작이나 태도, 안색에서 도끼를 훔친 듯한 느낌이 들지 않더라는 내용이다. 남을 오해하고 의심하는 것은 이렇게 쉽다. 혹시 나도 남들에게 어떤 오해를 받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니 조금은 뒤숭숭해진다. 지난 일이야 어쩌겠는가. 알 수 없는 일, 알아 봐야 소용없는 잡사에 신경 쓰지 말고 주변을 잘 갈무리하고 자기 앞가림에 충실한 것이 우리 같은 소시민이 한 해를 잘 매듭짓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직도 궁금하다. 형수와 시동생은 왜 그 시간에 같은 차를 타고 그 골목에서 나왔는지.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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