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승인된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교육부의 수정권고ㆍ명령을 거치고도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위안부, 관동대지진 등 서술에서는 일본 우익이 만든 후소샤 교과서보다 더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할 정도다.
민주당 역사교과서 친일독재 미화ㆍ왜곡 대책위원회와 친일ㆍ독재미화 뉴라이트 교과서 검정무효화 국민네트워크 주최로 11일 국회에서 열린 '교학사 역사 교과서, 이래서 절대로 안됩니다' 긴급토론회에서 발제자로 참석한 도종환 민주당 의원은 "지난 대정부질문에서 '쌀 수탈'을 '수출'로, '자본침탈'을 '자본진출'로 쓴 것을 지적하자 '반출'과 '침투'로 바꿨을 뿐 다른 쪽에선 '투자'로까지 표현하고 있다"며 "고치려는 시늉만 했지, 여전히 미개했던 한민족이 일제식민지를 통해 근대적 민족으로 개조됐다는 식민지근대화론에 기반한 친일 교과서"라고 지적했다.
'한국인들을 내쫓은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신시가지를 조성하였다'(280쪽)는 서술에 대해서도 수정권고를 받았지만 교학사는 '한국인들을 내쫓은 것이 아니라'만 삭제했다. 도 의원은 "명동, 서울역, 용산 등에 일본인 집단거주지가 형성된 것은 일제가 총독부를 동원해 조선인의 토지를 강제수용하고, 일본인들에게 요지를 값싸게 분배한 결과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교학사 교과서는 수탈한 물자를 일본으로 나르기 위해 일제가 건설한 철도 관련 서술에서 이러한 의도를 다루지 않고 '새로운 공간 관념이 형성되었다'(283쪽)고 기술해 교육부의 지적을 받았다. 교학사는 이를 수용했지만 '해외로 먼 여행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이에 따라 새로운 공간 관념이 형성되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관동대지진과 관련해선 '1923년 관동대지진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는 참사를 당하였다'고 서술해 누가, 왜, 어떻게 학살당했는지 설명이 없고, 후소샤 교과서보다 분량이 적었지만 교육부는 문제삼지 않았다.
논란이 돼 수정된 위안부 서술에서도 여전히 위안부 징용의 강제성을 축소ㆍ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49쪽 위안부 사진설명에서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 마치 위안부가 원해서 따라다닌 것처럼 서술됐다. 김태년 의원은 "1930년대가 아닌 1944년부터 강제동원된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기술된 부분도 지적된 부분만 삭제해 위안부가 어떤 성격의 것으로, 언제부터 강제로 끌려갔는지 서술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토론회 사회를 본 한상권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는 "50여년간 쌓아온 학계의 연구업적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라며 "반드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퇴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교사ㆍ학부모ㆍ시민 2만여명의 교학사 교과서 폐기ㆍ서남수 장관 퇴진 요구에 이어 12일에는 고려대ㆍ서울대ㆍ성균관대ㆍ연세대ㆍ울산대ㆍ전남대 등 전국 15여개 한국사 전공 대학원생들이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수정 '강요'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