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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12월 12일] 만델라의 추모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입력
2013.12.1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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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치러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추도식은 화해의 장이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91개국 정상이 참석해 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한 것은 그 자체로 만델라의 화해 정신을 보여준 것이다. 적대 국가인 미국과 쿠바의 지도자가 악수한 것은, 비록 짧은 순간이나마 반목을 내려놓은 상징적 사건으로 여겨진다.

생전의 만델라는 무지개 나라를 꿈꾸었다. 일곱 가지 고유의 색을 지니되 그것들이 하나가 돼 예쁜 무지개를 만들듯 차별 없고 동등하며 조화로운 사회를 염원했다. 만델라의 그 꿈은 이뤄졌을까. 남아공의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보면 감히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현재 남아공은 빈부격차가 가장 큰 나라로 분류된다. 소득분배의 불공평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2009년 0.63에 이른다. 0에 가까울수록 공평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공평한데 이 수치는 이 나라의 소득분배가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정책)가 존속하던 1993년의 지니계수가 0.59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지니계수로만 본다면 이 지독한 차별정책이 사라진 뒤 불평등이 더 심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업이나 소득에서는 흑백의 차이가 뚜렷하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하면 백인은 20명 가운데 1명, 흑인은 3명 가운데 1명이 실업자이다. 백인 가정의 수입은 흑인 가정의 6배나 된다.

지난해 8월 일어난 마리카나 백금광산 사건은 남아공의 취약성을 경제적 수치보다 더 실감나게 보여준다. 영국 업체가 소유한 이 광산의 광부들이 저임금에 항의, 파업에 들어가자 경찰이 유혈 진압에 나서 34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사라지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정상에 있는 사람들만 돈을 더 번다"는 노조 관계자의 말은 남아공의 혹독한 현실과 그곳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3년 전 열린 월드컵도 남아공의 가난한 사람에게는 축제가 아니라 좌절이었다. 경기장이 빈민촌 판잣집을 철거한 곳에 들어섰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강제 이주돼 허허벌판의 창고 같은 곳에서 지내야 했다. 노점상들은 환경미화라는 명분에 밀려 생활 터전을 내주었다. 가난과 분쟁을 피해 이웃 국가에서 들어온 이주민과 백인우월주의자들이 갈등에 본격적으로 휘말린 것도 월드컵 즈음이었다. 여기에 부패가 만연하고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으니 남아공이 지금 여러 면에서 혼란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이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고도 한동안 혼란스러웠듯 남아공이 가혹한 차별정책에서 해방됐다고 해서 당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델라 역시 집권 이후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썼지만 그렇게 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만델라가 꿈꾸던 세상이 이 나라에서 온전히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까지 접을 필요는 없다. 실제로 남아공이 브릭스의 일원인데다 금융 등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나라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다만 남아공이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세계가 감시하고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 특히 경제력이 앞선 이른바 서구 선진국들은 만델라의 죽음을 슬퍼만 할 게 아니라 남아공의 도약에 더 크게 기여해야 한다.

이미 지난 이야기지만 아프리카를 식민 지배하고 착취한 그들이 남아공의 고통에 결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델라가 용서와 화해를 강조했다고 해서, 서구가 그런 만델라의 죽음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애도를 표시한다고 해서 자신들의 아프리카 지배 역사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과거가 진정 부끄럽다고 생각한다면,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에 휘청거리는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도록 격려하면서 힘을 보태야 한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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