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충무로에 진출한 한 젊은 남자배우는 올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전공을 물었다. 그는 당황했다. 동석한 매니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 전공이 뭐지?"
매니저가 전공을 알려주자 그는 얼굴에 겸연쩍은 웃음을 그리며 말했다. "제가 (입학)원서를 낸 게 아니라 소속사가 낸 거라서요." 자신이 대학원에서 무엇을 공부할지 스스로 정한 게 아니라 소속사가 전공을 택해 원서까지 대신 제출했다는 이야기다. 인터뷰 말미 그는 기죽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부탁을 했다. "대학원 다닌다는 내용은 기사에서 다루지 않으셨으면 해요. 워낙 수업에 들어가지 못해 다른 학생들에게 미안하거든요." 그는 "입학 뒤 단 한번 수업에 들어갔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젊은 남자배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도 최근 대학원을 진학했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나 "연기 공부 욕심이 참 대단하다"고 추켜세웠다. 쾌활하게 웃던 그의 얼굴에 먹구름이 살짝 드리웠다. 그는 "대학원 공부에 대해선 제가 드릴 말씀이 없다"며 이내 풀 죽은 표정을 지었다.
연예인들의 대학원 진학 사례는 오래 전부터 허다하다. 명문대 대학원에 진학한 향학열로 화젯거리를 만드는 배우나 가수도 많다. 우리 사회의 고학력 바람과 무관치 않다. 연예인들이 바쁜 일정을 쪼개 대학원까지 공부하며 자신을 연마한다는 데 굳이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남자 연예인들의 대학원 진학 바람을 바라보면 씁쓸하다. 군대 입영을 연기하려고 대학원 진학을 지나치게 이용한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 때문이다. 연예계가 대학원을 남자 스타들의 입영 연기를 위한 도구가 된지는 꽤 됐다. 하지만 최근의 모습은 결이 많이 다르다. 자신이 어떤 전공을 공부하는 지도 모르는 '묻지마 진학'과 수업은 영영 뒷전인 '무늬만 대학원생'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묻지마 대학원 진학'은 앞으로 더 기승을 부릴 듯하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연예사병제도 폐지로 젊은 남자 연예인들의 대학원행이 증가할 거라고 말했다. 몇몇 연예사병의 일탈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지난 7월 연예사병제도는 폐지됐다. "남자 연예인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며 군복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닫히면서 대학원 진학에 더욱 매달리게 될 것"이라고 앞의 관계자는 덧붙였다.
연예계에서 아이돌 그룹의 수명은 5년이란 말이 돈다. 5년을 넘기면 '장수돌'이란 수식이 따른다. 배우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스타들은 한 때 강렬한 빛을 발하면서도 급속히 빛을 잃는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연예계에서 인기를 유지하기 힘들다. 한창 팬들을 위해 활동하며 돈을 벌어야 하는 스타 자신에게도, 오랜 시간 공과 돈을 들여 스타를 빚어낸 소속사에게도 군입대는 사형선고나 다름 없다.
사정이 그렇다 해도 대학원을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게 온당한 일일까. 떠들썩하게 대학원 진학 소식을 알리면서 정작 공부는 외면하는 연예인 대학원생들에게 묻고 싶다. 졸업은 정말 하실 생각이십니까?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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