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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무용론 해소

입력
2013.12.0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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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출범 이후 단 하나의 국제무역규범도 내놓지 못해 ‘무용론’까지 등장했던 세계무역기구(WTO)가 모처럼 합의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WTO시대에서 FTA시대’로 넘어가는 큰 흐름을 바꾸기는 역부족이란 게 대체적인 평가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7일 폐막된 제9차 WTO 각료회의에서 159개 참가국들은 ‘발리 패키지’에 최종 합의하고 이를 승인하는 각료선언을 채택했다.

발리 패키지는 새로운 국제무역질서인 도하개발아젠다(DDA) 가운데 일부를 떼어낸 것. WTO는 우루과이라운드(UR)보다 자유롭고 진전된 새로운 무역질서구축을 위해 2001년부터 DDA협상을 진행했지만, 농산물 지적재산권 등을 둘러싼 회원국간 갈등이 너무 커 진전을 이루지 못하자 비교적 합의 도출이 쉬울 것으로 보이는 ▦무역원활화 ▦농업보조금 ▦개발ㆍ최빈개도국 지원 등 3개 부문만 ‘발리 패키지’란 이름으로 분리해 2011년부터 협상을 진행해왔다.

무역원활화는 복잡하고 시간을 오래 끄는 통관절차 같은 비관세장벽을 제거해 세계 무역을 보다 촉진하는 것이 목적. 농업보조금은 큰 틀에서 줄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개발국 및 최빈국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는 내용으로 합의가 도출됐다.

이번에 타결된 발리 패키지는 WTO 출범 이후 만들어진 첫 세계 무역협정이다. 출범 20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런 합의를 내놓지 못했던 WTO는 그만큼 이번 타결에 감격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호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은 협상타결 소식에 눈물까지 흘리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WTO가 진정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전 회원국이 힘을 합쳤고 전 세계가 다시 세계무역기구 아래로 돌아왔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사실 WTO는 DDA협상이 장기교착상태에 빠지고 타결전망도 점점 희박해지면서, 존립위기에 직면했다. 심지어 ‘WTO 무용론’까지 확산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진국과 신흥국, 농업국과 비농업국, 서비스분야 강국과 약체국간 이해관계는 너무나도 엇갈렸고, 이들 전체를 한데 묶을 수 있는 단일규범 마련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실제로 전 세계를 커버하는 다자무역기구인 WTO 대신, 각 국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 같은 지역경제블록을 선호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FTA가 확산될수록 WTO는 위축되었던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이번 발리 패키지 타결의 최대 수혜자는 선진국도, 개도국도 아닌 WTO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각료회의에 참석했던 유럽연합(EU)의 카렐 데 휘흐트 무역담당 집행위원도 “(발리 패키지가) WTO를 구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어쨌든 출범 후 첫 결실을 내놓은 만큼 WTO무용론도 수그러들 것이란 관측이다. WTO측은 발리 패키지의 여세를 몰아 협상을 확대해나간다는 계획. 이달 중 스위스 제네바에서 회의를 열어 ‘포스트 발리 어젠다’를 논의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TO의 미래는 별로 밝지 않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몇 가지 합의는 도출했지만, 가야 할 길이 너무도 멀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애초 WTO가 씹기에 너무 많은 음식을 한 입에 넣었다”며 농업, 공산품에 서비스까지 모두 포함한 것 자체가 과했다고 지적했다.

한 통상당국자는 “WTO 중심의 협상은 계속되겠지만 그 보다는 각국이 보다 실질적인 FTA나 지역레벨의 무역협정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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