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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 가롤링의 전부라고? 탐정소설서도 새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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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 가롤링의 전부라고? 탐정소설서도 새 매력

입력
2013.12.0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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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작품의 저자가 그 유명한 시리즈의 조앤 K. 롤링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가 유명세의 영향권을 벗어나 단지 작품만으로 승부를 내보고 싶다며 감행한 가명(로버트 갤브레이스) 출판과 '듣보잡' 신인의 지나치게 원숙하고 세련된 작품에 대한 언론의 호평, 이후 제기된 실제 작가를 둘러싼 의혹과 그 작가가 아마도 셰익스피어 이후 영국문학의 최대 히트상품일 롤링이었음이 밝혀지기까지의 소동. 외신을 통해 전해진 이 일련의 서사만으로도 이 소설은 이미 충분히 흥미로운 전사(前史)를 구축했다. 이 모든 것이 약삭빠른 마케팅인지 어쩐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러므로 이 소설을 읽는 독자의 태도는 '얼마나 재밌게 썼는지 보자'는 비뚤어진 심사이기 십상일 텐데, 어쩐다, 앉은 자리에서 여러 시간을 내처 읽을 만큼 재미있는 것이 또 사실이니. 탐정소설의 고전적 플롯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이 소설의 재미는 젊고 아름다운 톱모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그 의혹을 파헤치는 가난뱅이 사립탐정과 그의 임시직 여조수의 매력적인 팀워크, 용의자와 목격자들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는 런던 상류사회의 매우 디테일한 습속과 세태 묘사에서 주로 발생한다. 거대한 풀장과 헬스장을 갖춘 초호화 빌라부터 알렉산더 맥퀸의 드레스까지, 부자들의 삶의 세목들은 그들의 위선과 허영을 적나라하게 증거하고, 작가의 걸출한 입담과 적나라한 풍자 속에서 소설 속 인물들은 단지 생생하다는 표현을 넘어서 '하이 소사이어티'의 실존인물로 독자에게 단숨에 육박해온다. '노숙자를 제외하고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영국 시민'에서 세계 최고의 부자로 초고속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던 그의 개인적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서사 구조다.

"높은 명성으로 그 불행까지 유명해지는 자는 불행하도다"라는 루키우스 아키우스의 중 한 구절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폭발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헌병 수사관 출신의 사립탐정 코모란 스트라이크다. 빚더미에 앉은 그의 개점 휴업 사무실로 런던에 갓 상경한 임시직 조수 로빈 엘라코트가 찾아오고, 조수를 고용할 처지가 아니라는 고백을 하려는 찰나 거액의 사건 의뢰인이 방문한다. 소설 첫 장면에 등장하는 투신 자살한 톱모델 룰라 랜드리의 오빠다. 혼혈 흑인인 룰라는 "강렬한 끼와 미모로 슈퍼스타가 됐지만 감정 기복이 심하고 불안한 성격" 때문에 자살했다는 경찰과 언론의 발표와 달리 역시 톱스타인 마약 중독자 애인에게 타살된 것이라는 게 오빠의 주장이다.

입양된 삼남매의 양부모를 향한 애정 투쟁과 책임지지도 못할 아이들을 인형 사들이듯 입양하는 부자 양엄마, 언론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수완을 펼치는 연예산업의 보스들과 돈과 품위를 위해서라면 음해와 협잡도 마다 않는 귀부인들. 이에 더해 파파라치의 카메라와 도청 장치에 갇혀버린, 사랑과 우정마저 질식시켜 버리는 명성의 족쇄까지. 살인범을 추적해가는 소설의 전형적 추리 서사에 고도의 탄력을 부여하는 것은 어두운 뒷골목의 세계와 병치된 상류사회의 이 일그러진 클로즈업이다. 뚱뚱하고 너저분한 외모의 사립탐정과 센스와 기지가 넘치는 귀엽고 사랑스런 여조수 로빈 사이에 끝내 로맨스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 깔끔하고 우아한 탐정소설의 매력 중 하나다.

원제는 'The Cuckoo's Calling'. 쿠쿠, 즉 뻐꾸기는 살해당한 룰라의 애칭으로, 그가 죽기 직전 애타게 찾았던 단 한 사람과 연관이 있다. "가 롤링의 전부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이 틀렸다. 이 책이 바로 그 증거다"라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서평이 단지 자국의 스타 작가에 대한 과찬만은 아닌 것 같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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