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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흐뭇하게, 때론 먹먹하게 담아낸 삶의 현장… 그리고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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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흐뭇하게, 때론 먹먹하게 담아낸 삶의 현장… 그리고 가족

입력
2013.12.0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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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연중 시류를 타고 나온다. 지난 7, 8월에 주목 받는 소설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던 걸 기억한다면 여름은 '픽션의 계절'임을 쉽게 눈치 챌 것이다. 연초에는 자기계발서 신간들이 많다. 이유는 다들 짐작하는 대로다. 휴가철에는 오락을 곁들인 스토리를 찾게 되고, 한 해를 시작하면서 마음가짐, 몸가짐을 새롭게 해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냥 출판 관행이 아니라 독자의 욕구가 이런 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럼 연말에는? 통계로 검증된 바는 없으나 한 해를 되돌아보고 정리하려는 욕구가 발동하는 이 계절에 어울리는 건 에세이다. 역사는 길지만 적어도 국내에서는 그다지 빛나는 작가나 작품들을 갖지 못해 '문학 2군' 취급 받는 게 안타깝지만 말이다.

봄날의책에서 편집해 만든 가 눈에 띈 것도 그 때문이다. 산문의 힘에 주목해 스위스 저술가 막스 피카르트의 명상록 을 소설가 배수아 번역으로 내놓고 이어 몇 권의 해외 산문집을 준비 중인 이 출판사가 처음 낸 국내 산문선이다. 이 출판사 대표인 박지홍씨와 작가 이연희씨가 신문이나 월간지, 주간지, 계간지 및 인터넷 매체들에 나온 글 중에서 골랐다.

공선옥 김별아 김선우 김소연 김연수 김중혁 백가흠 성석제 송경동 신해욱 오은 이기호 최성각 함민복 같은 시인, 소설가의 글이 많지만 노동자, 농민, 요리사, 언론인, 학자, 시민운동가 등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글도 적지 않다. 작가들의 글은 감수성이 묻어나고 알 듯 모를 듯 여운을 남긴다. 생활 현장을 그대로 담아낸 글들은 가슴에 스며들어 공명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한진중공업 투쟁으로 잘 알려진 김진숙씨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곁들여 '저마저도 저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진짜 간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곤 했으니까요' 하며 옳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 하나 없던 지난 날을 돌이킬 때는 그가 견뎌내야 했을 외로움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기호, 신해욱씨 등이 한국일보 '길 위의 이야기'에 연재한 글들은 트렌드가 되고 있는 짧은 에세이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교사 박성대씨가 에 기고했던 글 '소 이야기'는 아마도 이 산문집을 만든 편집기획자들의 기대치를 가장 잘 반영한 글이 아닐까 싶다. 애지중지 소를 돌봤던 '경주 최씨 고명딸 울 할매' 이야기다. '모아 놓고 보니 가장 많았다'는 고향과 가족을 소재로 한 글 중에서도 가장 울림이 크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고향의 추억을 맵시 좋은 문장으로 잔잔하게 그려낸 덕분이다. 출판사가 이런 산문집을 이어서 계속 낼 모양인가 본데 다음에는 이 에세이 정도의 수준으로 좀더 '엄선'해 글을 모으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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