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은 너무 거칩니다. 서기장 자리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1922년 겨울 레닌은 죽음을 직감하고 당 지도부에 유언을 남겼다. 당시 서기장은 스탈린이었지만 레닌의 후계자로는 트로츠키가 유력했다. 그의 경력과 카리스마는 동갑내기인 스탈린을 압도했다. 트로츠키는 정치국 회의석상에서 프랑스어 소설을 꺼내 읽었을 만큼 안하무인이었다. 실권을 잡은 스탈린의 숙청 1호는 당연히 트로츠키였다. 공산당에서 제명하고 해외로 추방시켰다. 성이 차지 않았던지 1940년 망명지인 멕시코에 비밀요원을 보내 등산용 피켈로 살해했다.
■ 중국의 천재적 군사지략가 린뱌오는 1969년 당 대표회의에서 마오쩌둥의 공식 후계자로 지명됐다. 그날 이후 마오는 린뱌오를 타도할 계략을 짜기 시작했다. 문화혁명 때 류사오치 전 주석을 숙청한 것처럼 마오는 결코 2인자를 용인하지 않았다. 이를 눈치챈 린뱌오는 71년 측근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로 도주하다 몽골 상공에서 추락해 생을 마감했다.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그의 죽음에 의문이 제기되고 마오의 권력욕에 희생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 '중국의 케네디' '충칭의 작은 마오'로 불리던 보시라이의 실각은 중국 권력투쟁의 산물이다. 당 원로들이 '튀는 정치인' 보시라이를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시진핑은 집권하자 라이벌인 그를 부정부패 척결 본보기로 세워 숙청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저우융캉 전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보시라이와 공모해 시진핑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가 흘러나오는 것도 새 체제 길 닦기 성격이 짙다.
■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2인자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숙청하는 방식은 시진핑이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을 축출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자신의 집권에 일정 역할을 했지만 1인 지배체제에 위협이 된다면 가차없이 숙청하는 절대권력 국가의 전형적인 통치술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자신을 해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를 숙청하라." 마키아벨리가 군주론 마지막 장에서 제시한 군주의 조건은 권력의 세계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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