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와 의 작가이며 최근 영화 '스톤'을 제작, 발표한 조세래 감독이 지난달 25일 타계했다. 향년 57세.
그는 지병인 위암 투병 중에도 처녀작이자 유작이 된 영화 '스톤'을 완성했다. 내기바둑꾼과 조폭 두목이 바둑을 통해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박진감 있게 그린 액션영화 '스톤'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현재 배급사 선정 작업 중에 있다.
영화감독 조세래를 우리는 바둑인으로 기억한다. 그의 본 무대는 충무로였으나 늘 한 발은 바둑계에 걸치고 있었다. 충무로에서 연출을 하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숨 가쁘게 달리다 좀 쉬어야겠다 싶으면 항상 바둑 동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를 처음 만난 건 1997년 무렵이었다. 나는 바둑 주간지를 만들고 있었다. 책 세 권을 들고 와 신간 안내를 부탁했다. '역수(驛水)'라는 제목의 바둑소설이라고 했다. 나는 우선 그 분량에 압도당하면서 '역수'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가 설명을 했을 텐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마살이 있어 물처럼 흘러간다.' 대충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단언컨대 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 바둑소설이다. 물론 이전에도 유명, 무명 작가들 가운데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 간간이 바둑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쓴 적이 있지만 바둑을 이야기의 소품 정도로 다루지 않고 바둑과 정면 대결한 소설은 가 최초였다.
신문에 연재를 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모두들 바둑소설에 목말라 있었던 것 같았다. 는 몇 년 후 문패를 '승부'로 바꿔 달고 다시 선을 보였고, 전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 그때부터 조 감독이 그걸 영화화한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재작년인가 오랜만에 그를 만나 바둑영화 제작이 어떻게 돼 가느냐고 물었다. "잘 안 되죠, 뭐."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제작비가 없어 2,000만원이나 3,000만원씩 돈이 구해지는 대로 찍다가 쉬다가 한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다행히 부산의 한 사업가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아 영화를 완성했다.
그가 암과 싸우고 있다는 건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조금 우울한 낯빛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씩씩했고, 술값은 항상 자신이 계산하려 했으며, 첫 아들 해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의기양양했으니까. 아들 이름이 '스톤'이라고 했다. "바둑이 돌이고, 내가 돌이거든."
'스톤'이 흥행할지 어떨지 모르겠다. 모쪼록 관객 동원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도 마지막 순간에 그런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 말했을 것이다. "내 아들 스톤, 네 본명은 역수란다. 굽이돌아 흘러가는 물의 정거장. 우리는 그 정거장에서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거야." 바둑계가 좋은 친구 하나를 잃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