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영원한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전설적인 미모로 유명한 엘리자베트 왕비. 이들의 공통점은 15~19세기 유럽 전역에서 세를 떨친 합스부르크 왕가의 인물들이자 통치국인 헝가리인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이기도 한 마리아 테레지아는 18세기 주변국들이 합스부르크 영토를 침범했을 때 헝가리 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 "우리의 생명과 피를 여왕의 왕관에 바치겠다"는 맹세를 끌어냈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헝가리에 더 애착을 보였던 엘리자베트 왕비는 아름다운 얼굴과 19인치의 가느다란 허리로 지금까지도 '시씨'라는 애칭으로 헝가리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헝가리를 통치했던 17~19세기 헝가리 귀족들의 유물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전시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헝가리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의상, 무기, 식기, 금은 세공품, 회화 등 당시 귀족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화려한 유물 190여 점이 나왔다. 이 시기는 헝가리로서는 치욕의 역사랄 수도 있지만, 150년에 걸친 오스만 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서유럽의 풍물을 받아들이면서 문화ㆍ예술 전반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때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에 농산물을 수출해 부를 축적한 당시 헝가리 귀족들은 합스부르크 왕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서유럽 귀족 계급의 공예품, 회화 등을 수집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노력했다. 특히 식문화는 동경의 대상이어서 아름다운 장식물이 놓인 식탁에서 까다로운 식사 예법에 맞춰 은식기에 식사를 하는 문화가 널리 퍼졌다. 언드라시 가문이 18세기에 사용했던 식탁용 장식 분수는 세 개의 주전자를 붙인 형태로 와인을 따라 마시는 데 썼다. 손을 씻는 데 쓴 주전자와 물그릇 세트에도 천사와 꽃 문양을 정교하게 조각하고 은으로 도금한 것을 볼 수 있다.
헝가리 귀족 문화의 화려함은 무기에서 정점을 이룬다. 전란이 잦았던 헝가리에서는 무기가 용맹과 부를 과시할 수 있는 도구였는데, 칼집에 역대 왕들의 얼굴을 촘촘히 새겨 넣거나 칼자루에 도금을 하고 터키석을 박아 넣는 등 장식품 못지 않은 호화로움이 특징이다. 16세기부터 사용된 총기도 귀금속과 상아로 온갖 장식을 했다.
합스부르크 지배 아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헝가리인들의 투쟁도 확인할 수 있다. 초대 국왕 이슈트반 1세가 1000년 교황 실베스테르 2세로부터 받았다는 '헝가리의 신성한 왕관'은 민족 주권의 상징이다. 헝가리인들은 합스부르크 왕이 대관식을 할 때 반드시 자신들의 영토로 와서 이 왕관을 써야만 헝가리의 왕으로 인정한다는 철칙을 고수해 민족의 자긍심을 지켰다. 헝가리 국회의사당에 보관된 이 왕관은 외부 반출이 불허돼 복제품으로 보여준다.
전시는 박물관 지하 전시실에서 내년 3월 9일까지 열린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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