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가을의 꽁무니를 내내 붙잡고 있었지만 신호탄처럼 첫눈이 내렸다. 이제는 본격적인 겨울이다. 코트 속에 꽂은 손은 날이 갈수록 더 딱딱해지고 사람들은 옷을 여미고 어깨를 둥글게 움츠리고 초식동물처럼 잰 걸음으로 거리를 서성인다. 해는 짧고 길어진 밤 내내 바람이 창을 두드렸다. 간밤의 광풍에 잎을 다 털린 앙상한 은행나무들이 생선가시 같은 속살을 드러내놓고 속절없이 아침을 견디고 있다. 이제 정말 겨울이다. 마음은 내놓은 화분처럼 꽁꽁 얼고 맨살을 드러낸 가로수처럼 부끄러워지는 계절, 밤낮으로 칼바람이 가난한 몸을 괴롭히는 겨울. 봄은 기약도 없이 멀기만 하다. 추위하면 군대가 먼저 떠오른다. 체감온도 20도를 육박하는 추위 속에서 철책근무를 서며 손발을 잘라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혹독했던 추위는 전역 후에도 안면홍조증이라는 후유증을 남겼다. 그런데 군대에서 제일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추위가 아니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바로 추위를 예측하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여당과 야당이 정쟁을 시작하면서 또 같은 논리를 펼친다. 크리스마스의 케빈처럼 지리멸렬하다. 지금 케빈은 이혼도 했고 귀엽지도 않은 30대 중반의 남자가 됐는데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싸우는 자들은 도둑의 편인가 케빈의 편인가만 논할 뿐, 지루한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몇 개월 뒤면 선거가 있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 뻔하다. 종북 딱지를 만드는 여당도 종북 딱지를 받고 저항하는 야당도 다 생각한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국가안보는 선거의 승리 쟁취를 위한 도구일 뿐, 입이 마르도록 국민의 안전을 위한다고 하는데, 실상은 지금 대한민국을 거대한 분열의 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 언론사의 기사에 따르면 새 정권이 들어서고 신고 접수된 간첩 신고가 4만 7,000건이다. 기사는 정확한 체포 인원을 밝히지 않고 기사 말미에 지난 정권에 체포된 공안사범들의 숫자로 마무리 됐다. 실제로 체포된 간첩은 4명에 불과하다. 간첩신고에 대한 기사는 간첩신고 접수 건을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종북 세력의 숫자로 착각할 수도 있게 쓰여졌다. 간첩을 신고하는 제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숫자들이 대한민국 전체를 종북 프레임에 가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세력들을 처벌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런데 이런 종북 프레임이 국민의 기본권인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반공이라는 깃발을 걸어 놓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공안정국 안에서 실제로 이득을 얻고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진즈부르그의 저서 치즈와 구더기는 치즈 속 구더기가 신의 섭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파하다가 종교재판으로 화형을 받은 16세기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진즈부르그는 당시 직책을 남용해 농부들을 착취해 배를 불린 최고 권력 계층인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에게 위험할 수도 있는 메노키오에게 이단이라는 낙인을 찍는 과정을 책 속에서 미시사로 풀어냈다. 무서운 것은 정치와 종교를 벗어나 그 시대 당시의 풍토였다. 권력층이 권력을 남용해 자신들의 입장에 반대하는 세력을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는 모습은 종교의 문제를 떠나 권력이 개인에게 딱지를 붙이는 현 상황과 꼭 닮아 있었다. 결국 메노키오는 이단이라는 딱지를 받고 화형을 당했다.
솔직히 권력자들 중에서 국가 안보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지금 공안정치 안에서 칼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개인의 부와 권력, 세력 확장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 국민은 보이지도 않는 것 같다.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고 그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는 모든 일이 그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노력으로만 보인다.
천정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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