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이루는 핵심 요소는 드라마와 음악이다. 연극과 가수의 공연이 혼합된 무대예술 뮤지컬은 이 두 요소가 화학적으로 얼마나 잘 융합됐는지에 따라 좋은 작품과 부족한 작품으로 갈려 왔다. 하지만 최근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경향을 지켜보면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바로 무대장치이다. 1970년대에 각본을 완성해 놓고도 이를 구현할 기술이 부족해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영화로 완성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시리즈처럼, 많은 뮤지컬이 무대기술의 진화에 힘입어 새로운 지평을 열기 시작했다.
지난 24일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고스트'의 첫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은 드라마와 음악보다 무대장치의 현란함을 앞세워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막에 얹힌 동영상과 무대장치 위 발광다이오드(LED)판이 뿜어내는 '가상의 무대'가 순차적으로 바뀌면서 원작 영화인 '사랑과 영혼'이 20여년 전 그려냈던 디지털 마술을 무대에서도 고스란히 살려낸다.
'고스트'는 오리지널 무대인 영국 웨스트엔드 극장에서 쓰였던 장치와 LED장비들을 대부분 들여와 개막 전부터 시각적인 화려함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제작진에 따르면 총 제작비 160억원 가운데 무대전용장치(일명 오토메이션)와 LED패널, 그리고 특수효과 비용 등으로 3분의 1에 달하는 45억원이 쓰였다.
막이 오르면 샘과 몰리가 함께 사는 브루클린의 아파트 실내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장이 거듭되면서 이 아파트는 순식간에 샘의 직장, 엘리베이터, 심지어 지하철 내부로 바뀐다. 물리적 세트의 위치는 대부분 고정된 채 무대 3면을 촘촘히 채운 30cm짜리 LED패널 700개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변화에 따라 장소가 역동적으로 전환된다. 조명과 영상 이미지가 복잡한 무대 변환을 대신한다. 그동안 아날로그 예술로 남아있던 뮤지컬이 이제 디지털의 문턱을 완전히 넘어선 모습이다.
기술을 앞세우다 보면 배우의 연기가 객석으로 잘 전달되지 않는다. 우리가 영화 '스타워즈'를 떠올리면 배우들보다 광선검과 우주 전투 장면이 앞서는 것과 같다. '고스트'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LED의 입자가 성긴 구형 패널 모델을 사용했다. LED를 통과하는 빛이 무대에 선 배우들의 움직임을 막아서지 않도록 하려는 장치이다.
'고스트' 스태프와 배우들은 무대에 동원된 마술적인 기법들에 대해 '함구'할 것을 각서로 다짐했다고 한다. 죽은 이와 산 사람이 사랑을 이어가는 스토리를 그리기 위해 제작진은 컴퓨터그래픽으로 살려낼 수 없는 '마술'을 무대에 구현했다. 샘의 유령이 닫힌 문을 통과하는 장면, 지하철에서 샘이 다른 유령과 다투는 모습, 그리고 몸을 떠나는 영혼이 빈 공간으로 빨려 나가는 장면은 마술이 아닌 다른 기술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샘의 영혼을 시종일관 따라다니는 푸른빛 조명, 몰리에게 "사랑을 가지고 떠날 수 있게 됐다"며 기쁘게 천국으로 향하는 샘의 퇴장 모습은 원작 영화의 따뜻한 감성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래도 화려한 기술이 돋보인 무대장치 탓에 연기와 음악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다 메를 연기한 최정원의 관록은 젊은 배우들 사이에서 빛났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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