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해킹으로 낙찰가를 조작해 공공기관 발주 공사를 따온 일당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이 1년 6개월간 35개 건설업체와 짜고 전국에서 불법으로 낙찰 받은 공사는 확인된 것만 77건으로 낙찰가 기준 1,100억원 규모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조재연)는 해킹으로 낙찰 가격을 조작한 혐의(컴퓨터 등 사용 사기 및 입찰방해)로 프로그램 개발자 윤모(58)씨와 입찰브로커 유모(62)씨 등 4명을 구속기소하고 건설업자 박모(52)씨 등 17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3일 밝혔다. 검찰은 해외로 달아난 프로그램 개발자 김모(37)씨 등 4명을 지명수배하고 범행 가담 정도가 가벼운 건설업자 3명은 입건유예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1∼2012년 경기ㆍ인천ㆍ강원 지역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한 공사의 ‘낙찰하한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공사 77건을 불법으로 수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가 전자조달 시스템인 ‘나라장터’는 입찰 비리를 막기 위해 서버에서 일정한 공식으로 낙찰하한가를 비공개 산출하고 이 가격과 가장 비슷한 값을 써내는 업체에게 공사를 맡긴다. 해커들은 이 산출 과정에 개입해 낙찰하한가를 원하는 값으로 조작하고 특정업체에게만 알려준 뒤 그 대가로 돈을 챙긴 것이다.
보안이 취약한 지자체 재무관과 응찰 건설업체의 PC가 해킹의 타깃이 됐다. 해커들은 지인을 통해 “문서를 검토해 달라”며 지자체 재무관 PC에 이동식저장장치(USB)를 꽂아 몰래 악성코드를 설치한 뒤 이후 진행되는 입찰 절차에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상적인 절차는 ▦재무관이 공사 기초금액을 입력하면 ▦15개 예비가격(공사 기초금액의 ±3%)이 자동 생성되고 ▦입찰사들이 투찰가를 써내면서 예비가격 2개를 선택하면 ▦나라장터 서버가 가장 많이 선택된 예비가격을 토대로 낙찰하한가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해커들은 생성된 예비가격 자체를 조작했고 결국 나라장터 서버는 해커들이 원하는 낙찰하한가를 내놨다.
이 같은 방식으로 해커 일당과 사전 공모한 건설업체 35곳은 인천 지역에서 12건, 경기 지역에서 36건, 강원 지역에서 29건의 공사를 따냈고, 브로커를 통해 해킹 일당에게 낙찰가의 4∼7%를 현금으로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간 브로커들에게 지급된 돈은 총 34억6,300만원에 이른다.
이들은 2010년 11월 22일 연평도 피격 이후 인천 옹진군 일대에 복구 공사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자 이듬해 4월 옹진군 담당 공무원 PC를 해킹해 피폭건물 복구 공사, 대피호 건립 공사 등 12개 공사를 따내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과거 입찰 범죄는 공무원과의 결탁, 건설사간 담합 등의 형태로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전산시스템 해킹을 통해 낙찰가를 빼내거나 조작하는 등 수법이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달청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 사이에 예비가격 조작이 불가능하도록 시스템 구조를 변경하는 등 체계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달아난 해커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한편 다른 지역에서 유사 범죄에 대한 수사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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