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닛과 꽁무니가 다 찌그러진, 20년도 더 된 승용차 한 대가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 들어선다. 차 안에서 나온 목발 두 개가 아스팔트에 닿는다. "아빠다." 대학생 우선미(27ㆍ가명)씨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병원에서 아버지를 볼 때 고단한 삶을 버텨나갈 힘이 솟는다고 한다.
부녀의 만남은 길어야 30분. 우씨는 아빠 손등만 어루만지다 아르바이트 시간에 떠밀려 붉어진 눈시울을 목도리에 파묻고 발길을 재촉한다. 그녀는 평일 강남구 삼성동 한 생명보험사에서 문서 수발을, 주말엔 양천구 신정동 한 가전 매장에서 재고 정리를 하며 매일 10시간 이상 일해 월 80여만원을 손에 쥔다. 우씨는 5개월째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녀는 일을 마치면 신림동의 대학 동기 집에서 잠을 청한다. 때로는 시집 간 다른 친구의 아기를 봐주며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한다. 우씨 가족은 지난 7월 대치동 단칸방에서 나왔다. 월세 50여만원이 10개월째 밀리자 참다 못한 집주인이 나가달라는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우씨를 보는 아버지(63)는 가슴이 미어진다. 그는 스무살에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도 화장품 유통업을 하며 악착같이 가정을 꾸려온 가장이었다. 그러다 14년 전 당뇨가 찾아오고 사업까지 휘청거려 가정이 기울기 시작했다. 급기야 올해 5월 말기 신부전증 진단을 받고 경기 수원의 한 요양병원에 머물며 신장투석을 받고 있다. 그 사이 두 차례나 급성 폐 부종으로 인한 심장마비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각종 피부염증과 안구 알레르기 등 추가 질환까지 생겼다. 그는 "1억원이 넘는 병원비로 그나마 벌어둔 걸 다 날린데다 거동이 불편하니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다"며 "모든 짐을 딸에게 떠 안겨 미안한 마음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불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남편이 아픈 이후 식당 일로 100만원이 조금 넘는 생활비를 보태오던 아내 이모(59)씨도 2011년 딸의 생일에 악성흑색종이란 희귀피부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지난해 8월 세상을 등졌다.
1일 만난 우씨는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아버지의 버팀목이 되겠단 의지를 내비쳤다. 학교 친구들과 남자친구의 든든한 지원도 우씨에게 큰 힘이 됐다. 친구들은 10만~20만원씩 십시일반으로 병원비를 보태줬고 남자친구 이모(27)씨는 우씨가 일을 할 때 틈나는 대로 새벽 잠을 줄여가며 병간호에 나섰다.
100여개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매번 고배를 마셨다는 우씨는 "취업 도전장을 내고 또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평소 설악산을 좋아하던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틈만 나면 낡은 차로 강원도 일대를 여행하셨다"며 "취업하면 192만㎞나 달려 툭하면 멈추는 차 대신 경차를 새로 선물해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병마와 싸우는 부모의 병상 곁을 지키며 생긴 새로운 꿈도 털어놨다. "2년 넘게 병원에 있다 보니 가난한 이들이 아플 때 무척 힘들어 하는 걸 봤어요. 언젠가 환자 가족의 자립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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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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