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지난 29일 가입의사를 밝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손익계산서는 결국 일본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 사실상 한일자유무역협정(FTA)이나 다를 게 없다는 TPP에 가입할 경우 양쪽 모두 '윈-윈'게임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 무역구조상 한국보다는 일본이 얻는 게 더 클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사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일본은 TPP의 알파이자 오메가나 다름없다. 일본과는 2004년 FTA협상을 시작했으나 양국간 입장 차가 워낙 커서 일단 무위로 끝난 상태. 현재 한ㆍ중ㆍ일 3국간 FTA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성사여부도 불투명할 뿐 아니라 타결되어도 한미 FTA같은 높은 수준이 개방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이런 상태에서 TPP에 가입한다면 양국은 별도 양자 협상 없이도 높은 수위의 FTA를 맺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12개 TPP 협상 참여국 가운데 ▦미국 칠레 등 7개국과는 이미 FTA를 맺은 터라 가입하든 하지 않든 달라질 게 별로 없고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3개국과는 FTA협상이 현재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결국 TPP 가입이 주는 가장 큰 결과는 한일 FTA 대체효과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양국 모두 벌써부터 손익계산에 분주하다. 한국 정부의 'TPP 관심 표명' 발표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한국의 참여 움직임엔 라이벌인 일본의 무역자유화로 인해 (한국이) 뒤처질 수 있는 위기감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한국의 TPP 참가로 인해 일본은 대한 수출이 늘어, 결국 일본의 이득이 한국보다 크다고 보도했다. 현재 40%의 관세율이 적용되는 김, 건어물 등의 품목은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증가하겠지만, 그 대신 자동차 및 관련부품(관세율 8%), 철강(3.9~4.6%) 등은 수출확대혜택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리 아키라 일본 TPP 담당상이 "한국의 참가 그 자체는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도, '밑질 게 없다'는 인식이 깔린 발언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우리나라 산업계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지난달 15일 열린 TPP 공청회에서 자동차와 기계업종 관계자들은 대일 시장개방 압력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정부 당국자도 "업종별로 영향은 다르겠지만 높은 수준의 대일 시장개방 땐 제조업 분야의 피해 및 무역역조 심화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FTA에 정통한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TPP 참여 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과는 플러스 효과가 예상되나, 일본과의 마이너스 효과로 전체적인 순효과는 국내총생산을 0.1~0.2% 정도 늘리는 데 그칠 것"이라며 "TPP 조기 참여로 인해 얻는 실익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TPP 가입 쪽으로 기운 것은 '일본이 가입하면 우리나라도 가입 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한 정부관계자는 "일본이 TPP를 통해 개방효과를 극대화하려 든다면 모든 분야에서 경쟁하는 우리나라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좋든 싫든 같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TPP가 대일무역적자 금액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포스트 세계무역기구(WTO) 시대'의 새 무역규범이란 점도 중요하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는 "TPP는 세계 통상질서를 좌우할 새 무역규범인 만큼 한일 FTA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면서 "한일 FTA 체결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시장 개방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우려되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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