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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2월 2일] 귀족과 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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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2월 2일] 귀족과 속물

입력
2013.12.0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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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斜陽)에는 '진짜 귀족'으로 묘사되는 중년여인이 나온다. '진짜 귀족'이라 해서 혈통이 순수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는 예법이나 격식을 따르지 않는다. 닭고기는 손으로 뜯어먹는다. 스테이크도 한 조각씩 썰어먹는 대신 한꺼번에 잘라놓고 포크로 찍어먹는다. 몰래 궁둥이를 까고 정원에서 오줌을 누기도 한다. 하는 짓만 떼놓고 보면 천박한 상것 소리가 나올 만한데, 그녀가 하면 어리둥절할 만큼 자연스럽고 품위가 철철 넘친다. 정해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매번 스스로 창안해내는 우아한 몸짓과 행동과 차림새들. 생활 자체가 의도치 않은 예술이랄까. 나로서는 차라리 '진짜 귀족'이라기보다 '예술적 안목의 천재'라 부르고 싶어진다. 하긴, 생활을 예술로 격상시킨 이들을 바로 '귀족'이라 하는 걸지도. 이 여인을 두고 내 삶을 둘러보면 '귀족'과 '속물'의 차이가 한결 선명해진다. 남들은 무슨 옷 입나, 남들은 무슨 책 읽나, 힐끗거리기 일쑤다.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초조해지는 삶. 따라하고 싶은 모델이 필요한 삶. 물론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돈키호테도 보바리 부인도 줄리앙 소렐도 그런 삶을 살았다. 다만 사방이 광고로 넘쳐나며 흉내의 욕망을 부추기는 요즘은 아예 세상 전체가 거대한 속물학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흉내에 흉내를 거듭하다 흉내에 지치게 되는 어느 날 우리는 과연 속물학교를 자퇴할 수 있을까. '귀족'이 될 수 있을까.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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