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 한 번 거칠다. 행동은 또 어떻고. "창자를 빼 갖고 젓갈을 담가버릴랑께.", "내가 오늘 그 아가리에 콱 청산가리 부어불랑께.", "염병하고 자빠졌네." 살벌한 대사들이 난무한다. 몸짓도 과격하다. 앉아서 발차기를 하는가 하면, 팔을 뻗어 상대의 목을 조르는 손은 빠르고 정확하다. 누굴까. tvN 드라마'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에서 조윤진 역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는 신예 민도희(20)다.
그의 진가가 발휘된 건 지난달 1일 방송된 5화 편이다. 서태지의 광팬인 윤진이 우연히 만난 서태지에게 과자를 얻어가지고 오는데, 이를 삼천포(김성균 분)가 먹어치우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이때 민도희는 '창자'와 '청산가리'라는 조폭들이나 쓸 법한 단어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쏟아 붓는다. 뾰족한 가위를 들고 다른 손으로 김성균의 목을 조르며 협박하는 장면은 엽기적이다. 인터넷에선 이 장면이 각종 블로그에 회자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키 152츠의 아담한 소녀가 내뱉는 강한 억양과 몸짓에 감탄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연기를 잘했다는 증거다.
그런데 이 배우, 한다는 말이 더 무섭다. "그 장면은 '응사' 촬영이 막 시작될 때 촬영한 거에요. 그러다 보니 많이 아쉬워요. 김성균 오빠와 서먹한 가운데 촬영했기 때문에 대사도 행동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죠. 더 강하고 세게 몰아붙였어야 했는데."
그러나 이내 활짝 웃으며 "이젠 성균 오빠나 정우(쓰레기 역), 손호준(해태 역) 오빠 등과 아주 친해져서 연기할 때 말이나 행동이 더 거칠어진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투리가 극히 자연스러운 건 실제로 전남 여수 출신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충청도, 어머니는 경상도 사람인데, 두 분이 결혼 후에 여수에 터를 잡으면서 그곳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다 18세 이후 달라졌다. '응사'의 하숙집 친구들처럼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다. 현 소속사의 오디션을 치르고 합격 소식을 받자마자 서울행을 택했다.
그는 여성 아이돌 그룹 타이니지의 멤버다. "가수가 꿈"인 자신의 길을 어린 나이에 찾은 것이다. 그런데 복병을 만났다. 작년엔 첫 디지털 싱글도 내고 활동을 했지만, 고쳐지지 않는 사투리가 문제였다. "지금은 '서울말'을 잘 하지만, 데뷔하고 나서도 사투리를 못 고쳐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소속사에서 연기 오디션을 보라는 거에요. 연기를 배운 적도 없는데 말이죠. 단지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였어요."
민도희는 그렇게 '응사'와 인연을 맺었다. '응사'의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와 처음 만났을 때 한 일이라곤 사투리로 편하게 대화한 것이었다. 그게 다였다. 두 달가량이 지났지만 제작진으로부턴 깜깜 무소식이었다. 당연히 떨어진 줄 알았던 차에 '한 번 더 보자'는 연락이 왔다고. 오랜 기다림 끝에 조윤진 역을 따내게 된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장을 내민 거다.
1994년생인 그가 1994년으로 돌아간다는 것, 실제로 스무 살인 그가 당시의 스무 살을 연기한다는 것, 그 자체가 도전이고 모험이다. 또 현재의 39세 중년 연기도 해야 했다. "서태지라는 가수만 알 뿐 그 시대의 일상을 전혀 몰라 걱정"이었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그는 "1994년의 분위기와 감성이 너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거리 촬영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든 작업 중 하나. 1994년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CC(폐쇄회로)TV나 전봇대 등을 가리고 당시의 공연이나 영화 등의 포스터를 붙이는데, 그 작업들이 마냥 신기하다는 거다. 진행을 서두르는 미술감독의 작업 속에도 그는 소품들에 눈을 뗄 수 없다고 한다. "포스터는 정말 신기해요. 제가 가수라서 콘서트 포스터는 그냥 지나치질 못하죠. 극중 하숙집에서 TV를 볼 때 나오는 인기 드라마 '마지막 승부'나 'M', '모래시계'도 신기해요. 대체 시청률이 50, 60%까지 나올 수 있는 게 맞나요?"
스무 살이지만 야무지고 꼼꼼한 건 극중 윤진이를 닮았다. 그는 지난 14일 명동 거리에 깜짝 출동했다. '응사' 시작 전에 시청률 7%가 넘으면 명동에서 프리허그를 하겠다는 공약을 지킨 것. "의외로 너무 크게 반겨주셔서 제가 더 감사했죠. 요새는 촬영으로 밤을 샐 때도 많지만 신인 가수이자 신인 배우로서 인생의 전환점이 된, 다시는 올 수 없을 기회를 얻어서 행복해요. '응사'는 아마도 제 운명이었나 봐요. 호호."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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