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또 '올 스톱'됐다. 새누리당의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단독 강행처리에 반발해 민주당이 29일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했다. 민주당은 본격적인 예산안 심사 첫날인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불참하는 등 강경투쟁을 선언, 국회의 장기 공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기국회 회기(100일) 중 90일을 허비한 상황에서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사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고 민생입법 처리에도 큰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국가기관 대선개입 문제를 놓고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여야가 서로 책임을 미루며 새로운 갈등을 계속 양산하는 구조여서 해법 찾기가 요원한 상황이다.
강창희 국회의장의 무제한 토론신청 거부로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민주당은 이날 내달 2일 강 의장 사퇴촉구결의안도 제출키로 하는 등 새누리당과 강 의장에 대한 비난을 토해냈지만 이달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보이콧'을 반복하면서 국민의 피로감을 더해주고 있다. 애초부터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연계하는 전략을 짜면서 단독처리를 반대할 명분을 잃고 새누리당의 강행처리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김한길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께 송구한 줄 알면서도 참담함 심정으로 이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고 국회 보이콧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비공개 의원총회에선 "대표직을 걸고 투쟁을 이끌겠다"고 거취까지 언급하며 결기를 드러냈다. 강경파에 휘둘린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출구 없는 투쟁'을 선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보이콧은 '양특'(특검ㆍ특위) 요구와 관련한 여권의 진전된 제안이 나오지 않는 한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요지부동으로 특검 불가 입장이고 여야간 물밑대화 채널도 일단 끊긴 가운데 보이콧 장기화에 따른 여론부담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당 안팎에선 무기력한 현 상황을 야기한 데는 감사원장-복지부장관 후보자 임명 처리를 연계한 전략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감사원장 동의안 처리의 전제조건으로 복지부 장관 후보자 사퇴를 내걸면서 사실상 '흥정'을 하는 인상을 준데다, 감사원장이나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는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황 후보자의 병역 및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을 공론화시켜 협상해야 했지만 복지부 장관 법인카드 유용만 얘기하다 끝난 셈이다. 황교안 법무장관 해임건의안과 감사원장 임명을 연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실패가 예고됐다는 지적이다. 결국 잘못된 전략이 여권의 무리한 처리 빌미가 됐고, 그 연장선상에서 벌이게 된 국회 보이콧도 여론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자성이 나오는 것이다.
이날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도 지도부의 대여 전략을 놓고 이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보이콧이 만능은 아니다. 같은 카드를 반복하면 국민 감동도 얻지 못한다"(박지원 의원)는 등 여론악화 우려가 제기됐고, 한 중진 의원은 "지금 민주당은 지리멸렬, 오합지졸의 위기상황으로, 제대로 된 전술이 없다"며 "의원이 된 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고 쓴 소리를 했다고 한다. 최민희 의원은 지도부 책임론을 두고 신경민 최고위원과 언쟁을 벌이다 눈물까지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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