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마비 사태가 빚어진 데는 여당의 정치력 부재 탓이 크다. 정국 운영의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 집권 여당이 정치의 본질인 협상과 타협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힘의 논리'에 의지하면서 여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사실상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강행처리에 따른 민주당 반발로 국회가 멈춘 29일에도 준예산 우려 등을 고리로 야당을 향한 공세를 이어갔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본인들 맘대로 되지 않았다고 화풀이로 민생과 경제를 내팽개치고 할 일이 산적한 국회 일정을 보이콧을 하고 있다"며 "투쟁과 정쟁 정국으로 몰아가는 정치로는 국민 지지 받기 힘들다"고 야당을 자극했다. 홍지만 원내대변인도 "민주당은 준예산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민주당은 현 시점에서 소수 강경세력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대승적 차원에서 민생을 먼저 돌봐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임명동의안이 처리된 만큼 일각에서는 야당을 달랠 카드가 나올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지만 오히려 압박 수위가 올라갔다. 여기에는 예산안과 민생법안 처리가 지연될 경우 역풍이 보이콧을 선언한 야당에게 갈 것이라는 상황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새누리당 지도부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여당이 정치력을 발휘하지 않을 경우 야당은 극단적 선택으로 몰릴 수 밖에 없고 그럴 경우'절름발이 국정운영'으로 인한 폐해와 그 책임을 집권세력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상황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이날 한일의원연맹 회의 차 일본으로 출국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황 대표는 지난 25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민주당이 제안한 여야 4인 협의체 구성과 관련해 3~ 4일 내에 답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황 대표가 자신이 말한 기한 내 답을 주는 것은 고사하고 악화된 여야 관계를 '나 몰라라'하며 자리를 비운 게 적절한 처신이냐는 것이다. 당장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답을 주겠다던 황 대표가 날치기를 하고 자리를 떠버렸다"고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현재 새누리당이 취하는 대야 관계 대응을 보면 독주자의 오만으로 보인다"며 "지지율도 우위에 있는 다수당이 파트너인 야당을 무조건 밀어 붙일 경우 역풍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정치적 기술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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