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코리아] 국내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가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가운데, 현행 증여세 규정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번 호에선 증여세 관련규정 개정을 통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방안에 관해 살펴본다.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겸 KAIST 겸직 교수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한 폐해가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 지배주주의 특수관계인이 설립한 계열회사가 해당 대기업의 모든 일감을 담당함으로써, 증여세를 회피하고 부의 세습을 도모하는 것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이러한 불합리를 규제하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도 그간 많은 진전을 거듭해 온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조치가 일감 몰아주기 관련 증여세 부과 조항이다. 작년에 신설된 이 조항에 따라 올해 증여세가 최초로 부과된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조항의 법적 문제점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세무적으로 접근하는 방안은 효과 측면에선 강력할 수 있으나, 법체계적론 논란이 일 수 있다. 시각에 따라선 세법보다는 상법이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다. 상법상으론 회사의 사업기회를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있으므로 이를 통한 규제의 여지가 있다. 또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선 특수관계인에 대해 현저하게 유리한 조건으로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이 규정을 활용할 수도 있다. 기존 세법상에는 부당행위 계산 부인 내지 상장 등을 규정한 증여세 규정이 있다.
하지만 이들 규정만으론 실효성이 미흡하다는 현실적인 판단하에 일감몰아주기 과세규정이 도입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 규정에선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의제조항’을 신설해 일정한 지분(3%) 이상을 보유한 특수관계인에 대해 정상 거래 비율(30%)을 초과하는 거래에 관해선 회사의 영업이익에 자신의 지분율을 곱한 금액만큼을 증여한 것으로 의제하여 증여세를 부과한다.
조세법률주의 위반 가능성
그러나 이러한 증여세 의제조항은 세법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먼저 해당 기업의 세후 영업이익 자체가 특수관계인에게 무상이전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가 문제다. 실제로 해당주식을 양도받거나, 배당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의 과세라면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세로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해당 영업이익이 주총의 결의에 의해 사내에 유보되거나 상여로 처리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과거 토지초과이득세의 경우 재산권보장과 평등주의 및 조세법률주의에 반해 위헌판결을 받은 바 있어, 이와 유사한 법적 문제점이 없는지에 대해 좀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양도 시에는 증여세로 과세된 부분이 공제되어 문제가 없다고 볼 수도 있으나, 해당 영업이익이 배당되는 경우에는 관련 규정이 없어 이중과세의 위험이 있다.
지배주주 충실의무의 도입 필요성
안정적인 공급선 확보 혹은 보안 등의 목적을 위해, ‘합리적인 경영판단’에 따라 일정 부분 일감 몰아주기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따라서, 불가피한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사안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조항의 엄격한 적용을 제외하거나 완화해 주는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
상법이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는 ‘합리성 원칙’의 적용을 통해 완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현행 증여세법상에선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세법이 아닌 관련법으로 규제하는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현행규정에 있어 미실현이익, 이중과세 문제점 등을 사전에 보완할 필요성도 대두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방안의 하나로서,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배주주에게 충실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일감 몰아주기는 지배주주의 지배권 남용 및 이해관계 상충 문제의 전형적 사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예방책으로서 지배주주의 소수주주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문화하여 일감 몰아주기를 충실의무 위반으로 추궁하자는 논리이다.
기업의 자율성 존중 및 해외탈출 방지
일감몰아주기 과세규정은 강력한 수단이지만, 법체계적인 문제가 있음은 물론,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 자율성을 침해하는 규제의 존재로 인해 극단적으로는 국내 기업의 해외 탈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제 국가간 이동이 용이해지면서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저세율, 저규제 국가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조업체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고임금과 노조 문제까지 더해져, 해외 탈출이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이 문제로 인한 세수감소의 폐해를 막기 위해 조세정책을 보완하는 등 자국 기업의 정착을 유인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각국의 접근방법
따라서 무리한 일감 몰아주기 과세규정보다는 지배주주의 충실의무조항을 명시적으로 도입하여 지배주주의 지배권 남용을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은 펄먼 Perlman 사례 등을 통해 지배주주가 자신의 이익보다 회사나 다른 주주의 이익을 위해 지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도 과거에는 인적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의무를 인정하여 왔으나, 리노타입 Linotype 판결 등을 거치면서 주주 간의 충실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명시적으로 지배주주의 충실의무를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긍정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주주이익 적정화로 방향 조정을
지배주주의 충실의무 도입을 계기로, 주주 이익의 극대화만이 아닌 ‘적정화’를 위한 논의가 활발해져야 한다. 즉, 회사는 주주들만의 배타적인 소유가 아닌 사회적인 기능체라는 전제하에, 회사를 중심으로 한 주주, 종업원, 채권자, 소비자 등 모든 이해관계인의 적정한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그중 주주의 이익이 최우선이겠지만, 단지 이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지배주주의 충실의무라는 법적인 기본 틀 안에서 경제민주화를 도모하면서, 아울러 기업의 자율성 역시 합리적으로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지배주주의 충실의무를 통한 경제민주화의 도모와 함께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함으로써 국내기업의 해외탈출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할 필요성도 대두된다. 국경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현대 디지털 시대에는 정부 역시 공공서비스의 제공자로서 현대 기업의 수요에 부응하면서, 사회 전체적인 요구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역할에 좀더 충실해야 할 것이다.
김승열 변호사는…
서울법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소재 폴 와이스Paul Weiss 로펌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양헌의 대표변호사 겸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 겸직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민간위원 및 방통위, 환경부, 교과부, 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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