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는 새끼를 몸 앞에 달린 커다란 주머니(육아낭)에 넣어 키운다. 왜 그럴까. 새끼를 뱃속에서 다 자란 상태로 낳는 다른 포유류와 달리 캥거루는 덜 자란 채로 출산한다. 어미가 가뭄 같은 환경 변화 때문에 충분히 먹지 못하면 새끼가 유산될 수 있어 아예 빨리 낳도록 진화했다고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세상에 일찍 나온 핏덩이들은 육아낭 속에서 어미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캥거루의 이 같은 습성에 착안한 '캥거루 케어'가 이른둥이(미숙아)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캥거루 케어를 시작한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선 1년 동안 이른둥이 총 45명이 인큐베이터를 일찍 벗어나 건강한 모습으로 부모 품으로 돌아갔다. 국내에서 캥거루 케어에 대한 1년 간의 의학적 데이터를 확보한 건 이 병원이 처음이다.
올 2월 태어난 소원이는 그 45명 중 한 명이다. 출산 예정일이 석 달 남짓 남았을 즈음 태동이 확연히 줄어 이상하다고 여긴 소원이 부모는 바로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양수과소증. 무슨 이유에선지 양수가 거의 없어져 급하게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임신 27주하고 3일만에 태어난 소원이의 몸무게는 단 980g. 이른둥이 중에서도 더 작은 초극소 저체중아였다. 태어나자마자 소원이는 엄마 품이 아닌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소원이처럼 일반적인 임신 기간인 37주를 채우지 못하거나 몸무게가 2.5㎏ 이하로 태어난 아기를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른둥이(미숙아, 조산아)라고 정의한다. 이른둥이가 아닌 보통 신생아는 1분당 호흡 수가 20~60회, 맥박은 120~160회 정도다. 혈압은 최고 수치가 적어도 40mmHg에서 시작해 매일 약 1mmHg씩 올라가고, 산소포화도는 85% 이상은 돼야 한다. 산소포화도가 이보다 낮다는 건 뇌나 심장으로 가야 할 산소가 모자란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른둥이는 장기도 생리 기능도 미처 다 발달되지 못해 출생 초기에 호흡이나 맥박 등 각종 생명신호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거나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길게는 약 120일까지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런데 소원이는 약 3개월 만에 퇴원했다. 다른 이른둥이보다 일찍 회복하고 퇴원할 수 있었던 이유로 의료진은 캥거루 케어를 꼽는다. 소원이 부모는 소원이가 퇴원할 때까지 매일 집과 직장, 병원을 오가며 하루에 1시간씩 소원이를 안아줬다. 깨끗하게 씻고 직접 신생아집중치료실에 들어가 기저귀만 찬 소원이를 살이 맞닿도록 가슴에 품어주는 것이다.
아빠 김우철씨는 "처음엔 기운 없어 보였던 소원이가 캥거루 케어를 시작한 뒤부터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크는 게 보였다"며 "동맥관 개존증 수술도 덕분에 잘 견뎌낸 것 같다"고 말했다. 1㎏ 미만 이른둥이의 약 80%는 대동맥과 폐동맥을 연결하는 혈관(동맥관)이 출생 후 정상적으로 닫히지 않고 열려 있다. 약물치료로 차도가 없으면 열린 부위를 묶거나 꿰매는 동맥관 개존증 수술을 해야 한다.
물론 캥거루 케어가 모든 이른둥이에게 꼭 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정상적인 신체 발달을 유도하고 생명신호를 회복시키는 등의 기존 의학적 치료에 대한 보조적인 방법일 뿐이다. 캥거루 케어가 이른둥이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의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원이를 비롯해 캥거루 케어를 받은 이른둥이와 그렇지 않은 이른둥이 40여명씩을 비교해 본 의료진은 분명한 차이를 발견했다. 이순민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입원 기간이 평균 10일 이상 감소했고 이른둥이의 주요 사망 원인인 패혈증이 생기지 않았으며 부모의 불안감도 훨씬 덜했다"고 설명했다.
한편에선 신생아집중치료실에 비의료인(부모)이 드나들고, 이른둥이가 인큐베이터 밖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에 감염이나 저체온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있다. 이 교수는 그러나 "지난 1년간 이 같은 우려가 실제로 나타나진 않았다"고 말했다. 캥거루 케어는 현재 강남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한 몇몇 대학병원에서만 운영하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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