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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1월 29일] 동물원의 역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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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1월 29일] 동물원의 역설에 대하여

입력
2013.11.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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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은 아주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지배하게 된 세상에서 동물들의 운명이 갖는 가슴 아픈 역사다. 20세기초의 동물학자 소콜로프스키는 유럽 동물원으로 잡혀온 고릴라들이 며칠 만에 죽는 이유를 알려는 동기에서 그들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에 따르면 "고릴라들은 우리 안에 가만히 앉아서 누구와도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지푸라기로 건드리며 장난을 걸어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고릴라들은 점점 더 우울해졌다. 이들은 심지어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손으로 눈을 가려 관람객들의 시선을 피하기까지 했다." 이런 고릴라들은 얼마 뒤 죽어버리곤 했는데, 주로 땅에 얼굴을 처박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동물들의 새끼를 잡아 일찍부터 동물원에 길들이는 것이었다. 이는 동물들에겐 더 참혹한 결과가 되었다. 알다시피 집단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적과 만나게 되면,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진을 치고 싸운다. 덕분에 새끼 하나를 산 채로 잡기 위해선 성체 10여 마리를 죽여야 했다.

어릴 때부터 갇힌 생활에 익숙해진다면, 스트레스 때문에 죽을 가능성이 줄어들 것은 확실하다. 이렇듯 어릴 때 잡혀 갇히고 전시되는 생활에 익숙해진다면 그들의 위험한 야수성도 누그러질 게 분명하다. 우리 안의 동물들이 거의 움직이는 일이 없으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떤 일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맹수도 다르지 않다. 동물원 우리에 적응하여 살아남게 된 맹수, 그것은 더 이상 맹수가 아닌 것이다.

동물원에서 만나게 되는 동물들은 원래의 그 동물들이 아니다. 그들이 원래의 관계 속에서처럼 인간에 대해 행동하기 시작한다면, 그들 또한 거기에 전시되는 동물로 존속하지 못할 것이다. 야수성을 되찾은 동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마도 죽음일 것이다. 동물들의 무기력, 그것은 동물원에 가두는 순간 우리가 그들에게 우리가 요구했던 것 바로 그것인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제 그곳은 동물들이 죽지 않게 관리하고 그들이 멸종의 불행을 피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공간이 되었다. 동물원에 갇히지 않은 호랑이나 곰, 코끼리가 있다면,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피해나 공포 때문에, 혹은 가죽이나 쓸개, 이빨 등으로 인해 사냥 당해 죽게 될 것이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음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동물원이 동물을 보호하는 시설이 된 시대란, 동물들이 동물원 말고는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 지구상에 더는 남지 않았음을 뜻한다는 점에서, 동물원이 동물들을 가두고 전시하는 유폐와 모욕의 공간이었던 시대보다 더욱더 끔찍한 시대인 것이다.

며칠 전 사육사를 물어 중태에 빠뜨린 호랑이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슬픈 동물원의 역사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에 이른 분에 대해선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사고를 쳤으니 호랑이를 죽여야 한다는 주장은 살인죄를 물어 맹수를 처벌하자는 것처럼 들려 황당하다. 그건 맹수가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것을 두고 잘못이고 죄라고 비난하는 것만큼이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주장이다. 맹수의 야생성이 살아난 만큼 위험하니 죽여야 한다는 주장은 동물원이 호랑이는 야생성을 가진 맹수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가정하고 있음을 새삼 상기시켜 준다. 곤혹스런 것은 사고를 친 호랑이가 바로 다시 얌전히 우리로 되돌아갔다는 사실이다. 그 놈은 인간들의 바람처럼 이미 맹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슬프고 난감한 것은 멸종해가는 종의 보존을 위해 그 놈을 죽여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동물원 말고는 더는 살 곳이 없게 된 동물들의 운명을 상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에서 보이는 프란츠 마르크의 불길한 예감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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