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상위 3개 경제대국인 영국 독일 프랑스가 이주민 유입 규제에 나서면서 빈부에 따른 회원국의 갈등이 심화할 전망이다. 노동 인구의 자유로운 이동을 근간으로 하는 EU의 단일시장 정책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6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를 통해 역내 이민에 대한 복지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2007년 EU에 가입해 내년부터 이민 제한 조치가 풀리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를 직접 겨냥한 조치다. 캐머런이 발표한 이민 규제안에는 ▦이주 3개월 이전 실업수당 청구 금지 ▦무직자의 주택수당 청구 금지 ▦구직활동 포기자ㆍ노숙자 강제추방 허용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 벌금 4배 상향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구직보다는 복지 혜택을 노려 이주하는 소위 '복지 쇼핑'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캐머런은 나아가 EU 차원의 이민 통제를 주장하면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EU 평균의 일정 비율에 도달한 국가에만 이민 제한을 풀어주거나 국가별로 연간 이민 허용 쿼터를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캐머런은 28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구소련권 국가들을 상대로 열리는 EU-동부 파트너십 정상회의에서 이 같은 방안을 설명하기로 했다. 내후년 총선 공약으로 내건 2017년 EU와 관계 재협상에서도 이민 제한을 우선적으로 관철한다는 방침이다.
독일과 프랑스도 영국과 보조를 맞췄다. 좌우 대연정으로 새로 출범하는 독일 정부는 27일 "빈곤에 따른 이민 때문에 일부 지역이 사회문제를 겪고 있다"며 "이주민들의 부당한 복지혜택 요구에 강경하게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도 이날 "비정규직 이주노동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EU의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 규정을 악용하는 사례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FT는 양국이 자유로운 역내 이동권을 보장하는 EU 규정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민에 따른 사회ㆍ경제적 문제 증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U 부자 국가들은 복지ㆍ교육ㆍ보건 예산 부담을 들어 이민 규제를 주장해왔다. 이런 정책 기조는 최근 극우정당이 약진하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FT는 "이주민이 무제한으로 유입될 경우 영국독립당 등 이민 반대를 표방하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세를 불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집권 보수당은 올해 지방선거에서 영국독립당의 지지층 잠식 현상이 확인되자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 및 2015년 총선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지지율이 사상 최고수준인 30%에 육박하며 사회당 정부를 압도하고 있다. 반(反)유럽통합 입장을 견지하는 극우정당의 득세는 EU의 경제ㆍ정치 통합 노선 전반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EU는 즉각 견제에 나섰다. 라즐로 안도르 EU 고용담당 집행위원은 "영국이 동유럽 이민자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음에도 과장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캐머런의 이민 제한 방침은 영국을 형편없는 나라로 끌어내릴 우려가 있다"고 비난했다. 비비앤 레딩 법률담당 집행위원도 "영국이 단일시장의 일원으로 남아 있으려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EU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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