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건대 나는 밀양에 올해 한 번도 내려가지 못했다. 카톡방에서는 밀양 인권지킴이들이 시시각각 참담한 상황을 전해왔다. 새벽 5시부터 할매들이 용역과 경찰에 밀리고, 욕먹고, 연행된다는 소식들이 올라왔다. 마음만 급하고, 화가 나고, 아무 것도 못하는 내가 싫었다.
밀양의 할매 할배는 우리나라 여느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와 다름없는 분들이었다. 주름에 검버섯 핀 얼굴, 흙 노동으로 쪼글쪼글해진 손. 나는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으나 늘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30일 출발하는 밀양 희망버스에는 꼭 동승하려고 한다. 그날도 서울에서 낮 집회가 있고, 저녁에도 일이 있다. 다 마치고 밤늦게 따로라도 가려 한다. 그래야 빚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요즘 강연 나가면 자주 '연대'를 강조하곤 한다. PPT 자료 영상 말미에는 늘 밀양 할매들이 등장한다. 지난해 울산 비정규직 노동자이 송전탑 농성현장을 지지 방문했을 때의 장면을 편집한 것이다.
할매들은 8년 동안의 송전탑 싸움을 하면서 많은 것을 잃었지만 또 많은 것을 얻었다고 했다. 밀양 골짜기, 높은 산봉우리 송전탑 싸움을 하는 곳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할매들은 그런 일들을 몰랐다. 왜? 남의 일에 와서 제 몸 던져 가며 싸우느냐, 혹시 뭘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을 거다. 그 할매들은 송전탑 싸움을 하면서 당신들이 이제까지 살아왔던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었음을 발견해갔다. 지난해 10월 생명평화대행진 때는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과 밀양의 할매들이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내몰리고 쫓겨나는 설움이 생면부지의 그들을 부둥켜안게 했던 거였다. 그 모습에 또 많은 이들이 울었다.
올 1월, 대선 뒤 절망에 빠진 노동자들이 연이어 죽어갈 때였다. 밀양 할매 할배들이 버스를 대절해 서울 대한문을 찾아왔다. 송전탑 싸움 틈틈이 농사지은 감자와 고구마, 풋고추와 컵라면 한 박스를 갖고 왔다. 그 쭈그렁 손으로 억센 노동자들의 손을 붙잡고 격려했다. 싸움 빨리 끝내고 아들, 딸 밥 해주러 가자고 하셨다. 먼저 전국에서 투쟁하는 그들을 밥해주러 가려면 돈도 필요하니 곗돈을 붓자고 하셨다. 그 할매 할배들이 말이다.
지난 봄, 그 할매 할배들이 자식 같은 용역과 전경 앞에서 알몸 시위까지 해가며 막았던 공사가 다시 재개될 모양이다. 다시 질질 끌려나가 내동댕이쳐지고 연행되기도 할 모양이다. 돈 필요 없다고 아무리 악다구니를 써도, 신고리 4호기 원전이 부품 교체 문제로 제 때 가동되지 않을 게 거의 확실한데도, 무조건 공사는 강행한단다. 암 발병률을 내보여도, 지중화하라는 전문연구기관의 권고도 아랑곳없다. 다만 공권력에 대한 도전일 뿐이다.
이른바 국책사업 현장은 늘 그랬다. 설명이란 이름의 통보, 설득란 이름의 강행만 있었다.지금 밀양이 딱 그렇다.
그래서 꼭 가야겠다. 할매들, 할배들 얼굴 보러 가야겠다. 그들의 손 잡고 싶어 가야겠다. 그곳에서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 연대만이 살 길이라는 것,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꼭 가야겠다. 산꼭대기 높은 곳을 네 발로 기어오르는 할매들, 할배들의 그 고단함이 단 하루라도 중단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분들이 바라는 핵발전 없는 세상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기를. 그리고 도리어 그분들에게 무한한 힘을 얻어 돌아오는 희망버스의 철칙을 만들기 위해서 꼭 가야겠다.
밀양의 산 속은 추우니 따뜻하게 입고 오라는 당부의 말씀대로 옷 따습게 입고 할매들 산 속 농성장에도 꼭 올라보고 싶다. 그 할매들의 연대의 마음 안아오고 싶다.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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