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미국이 B-52 폭격기 출격이라는 강경 대응으로 맞서면서 동북아 안보 지형에 급격한 변화가 예상된다. 세계 양강(G2)의 힘겨루기 성격이 강한데다 동맹국들의 이해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향후 수일 동안은 미중의 군사력이 집중돼 동북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중국이 23일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지 수시간 뒤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곧바로 우려를 담은 성명을 냈다. 외교안보를 담당하는 두 장관이 동시에 별도 성명을 낸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팀과 국방부, 국무부는 강도를 높이며 연일 중국을 비판했다. 특히 국방부는 25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서 예전처럼 군용기 비행을 계속하되 만약의 경우 자위권을 발동하겠다고 했다. 중국이 방어적 비상조치를 취하면 맞대응하겠다는 경고였다. 이후 괌의 미군기지에서 B-52 폭격기가 동중국해를 향해 이륙했다. 말로 경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모할 수도 있는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미국은 B-52 폭격기 출격을 통해 단호한 의지를 보이며 중국의 조치를 사실상 무력화한 만큼 당분간 직접 충돌을 피하며 해법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대응과 관련, 뉴욕타임스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이 미중의 아시아 패권 경쟁에서 나온 가장 대담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2011년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하겠다고 선언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이익에 정면 배치된다는 것이다.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은 지리적으로 동북아와 동남아를 잇는 고리에 해당한다. 미군의 작전ㆍ훈련지역도 포함돼 있다. 미국이 중국의 조치를 아시아 중심 전략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할 경우 인근 남중국해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미국의 강경 대응을 불렀다. 패트릭 크로닌 신미국안보센터(CNAS) 아시아담당 연구원은 "중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상태라면 2년 안에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중 갈등의 해법을 찾아야 할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이 아시아 경험이 적다는 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중국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겅옌성(耿雁生) 국방부 대변인이 27일 "미군기가 26일 오전 11시∼오후 1시22분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동쪽 경계선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왕복 비행하고 댜오위다오(센카쿠)에서 동쪽으로 약 200㎞ 지점에서 활동했다"며 "중국 군대는 전 과정을 감시했고 곧바로 항공기 기종을 식별했다"고 한 것은 앞으로는 가만 있지 않겠다는 일종의 경고로 들린다. 그는 "중국은 관련 공역을 유효하게 관리 통제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적절한 시기에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해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인민망(人民網)은 해군 전문가 리제(李杰)와의 인터뷰를 통해 B-52 폭격기 출격이 중국의 반응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제는 "미국의 정찰과 정탐이 방해받을지 모른다는 우려와, 이 지역의 주도권과 통제권을 계속 행사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며 "지역 동맹국들에 미국 말을 앞으로도 잘 들으라고 이야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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