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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11월 28일] 시민의 예의를 잃지 않는 말 문화를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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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11월 28일] 시민의 예의를 잃지 않는 말 문화를 키우자

입력
2013.11.2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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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어느 텔레비전 방송의 코미디에서 '~하고 가실게요'라는 잘못된 높임말을 사용하길래 이를 고쳐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9월초 그 방송 꼭지 첫머리에 이것이 잘못된 말투라는 자막이 떴다. 문제는 그 다음날 벌어졌다. 책임 감독이라는 분이 "해당 단체에게 답변 공문만으로 끝낼 수 있지만, 이런 지적을 받고 있다는 걸 시청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며 굳이 자막을 넣은 까닭을 언론에 털어놓은 것이다. 코미디 만들기 어려운 사정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방송의 최고 권력자인 시청자에게 한글 단체 좀 혼내달라는 식으로 말한 셈이다.

나는 당장 논평을 써서 이 고약함을 꼬집었다. 내가 대표로 있는 한글문화연대에서 코미디 제작진에게 뭔가 바로잡아달라는 공문을 보낸 일은 처음이었던지라 좀 억울했다. 게다가 우리 단체가 뉴스나 다큐멘터리에 댈 잣대를 코미디에 내밀 정도로 속 좁은 곳은 아니다. 개그맨들이 만들어내는 유행어는 좀 지나면 시들해지므로 일일이 따질 필요도 없거니와 창작의 자유 또한 매우 소중한 가치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잘못된 높임말은 여느 유행어와는 달리 이미 병원이나 한의원, 미용실 등에서 굳어져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고, 그 코미디가 여기에 무임승차하여 잘못된 높임말을 정당화하며 퍼뜨리는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작의 어려움을 털어놓기엔 좀 어설프고 궁색한 구석이 있었다.

이 논평이 나간 직후 인터넷 기사 밑에는 나를 비난하는 댓글과 그 코미디 방송을 비난하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렸다. 그 댓글들을 읽다가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양쪽의 댓글에서 나는 매우 심한 욕설과 막말을 셀 수 없이 만났다. 내 논평을 비난하는 사람도 욕설을, 내 뜻에 공감하는 사람도 그 감독을 비난하는 욕설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비는 똘아이'가 되어 있었다. 뭐라 한 마디 쓰고 싶었지만, 차마 발을 담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코미디 관련 기사에 붙는 반응이 이럴진대 날카롭게 대립하는 정치 기사라면 어떻겠는가? 물론 각목과 쇠파이프 들고 서로 피 튀기며 싸우는 짓보다야 낫다. 그러나 이렇게 위로하기엔 사람이라는 존재가, 시민이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초라하다. 나는 이런 말 문화가 시민들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해치고 다양한 공론장에 시민이 참여할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본다. 우리 헌법에서 밝히고 있는 민주공화국이란 시민이 누구로부터도 자의적으로 지배받지 않을 자유와 인간 존엄의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민주적 절차와 제도를 활용하여 스스로 지배하는 정치 체제이다. 그런데 욕설과 막말이 난무한대서야 어디 더러워서 그런 판에 참여하고 싶겠는가? 시민의 예의를 잃지 않는 말 문화가 절실하다.

그렇지만 이 같은 문제의 책임을 시민 개개인에게만 돌려서는 곤란하다. 비록 이런 말 문화가 불편하다고는 해도 그것은 시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받고 있는 다양한 분노의 표출일 수도 있고, 정치와 언론이 제 구실을 못해서 생기는 울분의 표현일 수도 있고, 불의라고 느끼는 사태에 항거하는 자기 방식의 의사 표현일 수도 있다. 당파적 이기심에서 이런 말 문화를 부추겨온 정치인이나 언론의 책임이 더 큰 것 같다. 특히나 정치적 반대자의 이마에 딱지를 붙이는 대화 방식은 모든 근거와 중간 이야기를 생략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에게 '악마'라는 규정을 내리는 전형적인 폭력 대화다. 내가 '똘아이'가 된 것처럼.

시민의 예의는 단지 겉치레가 아니다. 표현이 우아하더라도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무시하고 배제의 공포를 자극하는 말이라면 그런 말 역시 시민의 예의에 걸맞지 않다. 예의는 우리가 다른 시민을 나와 같은 시민으로 대접하고자 하는, 그래서 우리가 모두 민주공화국의 동등한 구성원임을 인정하는 태도다. 내가 응원하는 프로레슬링 선수가 병따개로 상대방 이마를 짓찧어 이겨도 통쾌하다면, 나는 내 정신상태를 의심할 것이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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