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끊어지지도, 잘 닳지도 않는 나일론의 개발은 인류가 섬유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 최대 혁명으로 꼽힌다. 1938년 개발된 나일론은 7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의류 뿐 아니라 일반 산업분야에서도 가장 널리 쓰이는 소재다.
지난 4일 효성은 새로운 신소재를 선보였다. 폴리케톤. 나일론보다 충격강도는 2~3배, 내화학성은 30% 이상 높고, 내마모성 역시 현재 최고 수준인 폴리아세탈(POM)보다 14배 이상 뛰어나 '나일론 이후 최고의 소재'란 평가를 받고 있다.
폴리케톤은 그간 많은 선진국 기업들이 손을 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기술확보도 쉽지 않고, 상업화는 더욱 쉽지 않았다. 글로벌 기업 가운데 폴리케톤 같은 고분자 신소재를 만든 기업 역시 미국의 듀폰과 제네럴일렉트릭(GE), 독일의 바이엘 등 손에 꼽을 정도이다.
폴리케톤이 주목받는 건 높은 효용성과 부가가치 때문이다. 강도와 내열성, 탄성 등이 우수한 만큼 각종 산업용 자재의 원료로 쓰이는데, 특히 섬유업계에선 스포츠, 토목, 정보통신 분야 등에서 고기능 산업용 원사로 활용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관련 부가가치 규모를 약 10조 원으로 예상하고 있고, 2020년까지 산업 전반에서 약 8,700여명의 신규 고용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업계 전반에 불고 있는 신소재 개발바람은 섬유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수출용 의류소재에 주력해왔던 업계는 중국 등 후발국들의 추격이 거세지자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용 소재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른바 '슈퍼섬유'이다.
슈퍼섬유는 나일론 등 기존 의류용 섬유보다 강도와 탄성 등 모든 면에서 성능이 월등한 특수섬유를 일컫는다. 기존 의류의 기능성 강화는 물론 플라스틱, 철의 대체제로까지 떠오르며 산업용 소재로 활용되고 있는데, 대표주자로는 '아라미드'섬유와 탄소를 원료로 한 '탄소섬유'가 있다. 특히 아라미드는 ▲강도가 좋은 파라계와 ▲내열성이 뛰어난 메타계로 나뉜다.
막 개발된 폴리케톤과 달리 두 소재는 선진국에선 이미 수십 년 전에 개발해 상용화가 됐고, 국내도 그간 해외에서 전량을 수입해오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시장 전망도 밝아 업계는 파라 아라미드의 경우, 시장 규모가 지난해 5만톤에서 2016년 7만톤까지 늘 것으로 보고 있고, 탄소섬유 시장 역시 2008년 1조5,000억원에서 2025년 6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2009년 국내 최초로 메타 아라미드를 생산한 휴비스는 주로 고온의 증기분진이 나오는 공장 굴뚝의 필터 용도로 연간 1,000톤을 만들고 있으며, 향후 소방복, 전기 절연지 등으로 품목을 확대할 예정이다. 연간 5,000톤 가량의 파라 아라미드를 생산하는 코오롱은 현재 미국 유럽 남미 중국 동남아 등에 판로를 갖고 있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탄소섬유 상업생산을 시작한 태광은 울산에 탄소섬유 원료인 프리커서를 연산 3,000톤, PAN계 탄소섬유를 연산 1,500톤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효성 역시 올 상반기 탄소섬유 상업생산을 시작해 한해 2,000톤을 만들고 있다.
슈퍼섬유는 아니지만 기존 섬유의 성능을 향상시킨 친환경 고부가가치 섬유에도 집중하고 있는데, 휴비스는 ▲기존 인체 유해한 화학 접착제를 대체하는 '로멜팅 화이버' ▲옥수수를 원료로 한 '인지오' ▲페트병을 재활용한 '에코에버' 등을 생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소재의 성능이 진화하면서 섬유도 의류 뿐 아니라 IT, 자동차, 우주, 항공 등으로 활용범위가 매우 넓어졌다"며 "원천기술이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만큼 앞으로 기업들에겐 신소재 개발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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