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한 마리 백 원이었고 갈치 한 마리에 오십 원 했다. 이건 또 무슨 광무(光武) 연간의 곰팡스러운 얘기인가 싶겠지만, 겨우 이십여 년 저쪽, 바닷가 백 리 안쪽 장바구니에 담기던 생물 바닷것의 값이 그러했다. 세 뼘 소반상 위에 제일 낯익은 것이 갈치구이였다. 바다는 소박한 살림에도 넉넉히 기름기를 나눠줄 만큼 건강했다.
그래, 순전히 사진 한 장 때문이다. 지난주 목포행 기차에 오른 것은. 목포시 관광과에서 날린 문자메시지에는 어슷하게 칼집을 넣어 노릇하게 구운 도톰한 갈치 두 토막이 첨부돼 있었다. 그 미끼를 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어릴 적 살과 피톨이 돼준 그 단백질에 끄달리는 것은, 능동의 행위가 아니라 불수의의 귀소본능이라 해야 옳다.
그래서 떠난 목포 맛기행. 바다가 더는 전처럼 푸지지 않고, 사람도 옛날 인심을 기대하긴 힘들어졌지만, 남해안 고깃배는 여전히 새벽 그물을 건져 올리고, 목포엔 바다의 소출이 모여들어 거래된다. 오미(五味)니 육미(六味)니, 그래서 이 도시엔 먹거리가 여즉 풍성하다. 결론, 차가워진 공기에 몸도 마음도 허룩하다고 느낀다면 목포에 가볼 것. 거기 가서 서너 끼, 남도의 음식으로 뱃속을 채우는 것만으로 훌륭한 월동준비가 될 것이다.
# 낮 12시, 만호동 항동시장 백반집
이 정도는 해 줘야제, 그래야 전라도 밥상이제, 이렇게 웅변하는 듯한 상을 바닷가 백반집에서 받았다. 김치 네 종류에 나물 세 가지, 젓갈 둘에 연두부가 동그란 백자 접시에 담겨 나왔다. 그게 다인 줄 알았는데 오징어 숙회와 간재미 회무침, 병어회가 뒤이어 나온다. 여기까지가 기본 찬. 한 사람 당 조기 세 마리씩 든 탕에 먹갈치구이 한 토막씩이 이 집의 메인이었다. 이상이 8,000원짜리 백반. 오전 8시 용산역에서 얄팍한 햄버거로 아침을 때우고 내려온 길이어서 그 감격이 더할 수밖에 없었다.
"우린 얼린 것 안 써. 어쩌긴? 우리 아저씨가 나가 잡아와야지. 쩌어그 대 놓은 배가 우리 것이여."
목포에서 조기는 무척 흔한 생선이다. 이웃 영광의 칠산바다에서 잡히는 조기가 더 유명하지만 목포의 물동량도 거기 못지않다. 영광에선 천일염 소금을 쳐서 말려 굴비를 만드는 비중이 큰데 목포에선 주로 생물로 소비된다. 조기 구이와 찜, 탕이 어느 집 할 것 없이 다 밑반찬인 셈이어서, 정작 조기를 간판에 내건 식당을 찾기는 쉽지 않다. 백반집 가서 조기를 달라고 하면 된다. 다시마 국물에 파, 고추만 넣어 끓인 조기탕 맛이 더할 나위 없이 깔끔했다. 전날 밤까지 바닷속을 헤엄쳐 다니던 조기의 싱싱함 말고 다른 비결은 없다고, 주인은 얘기했다.
제주에 은갈치가 있다면 목포엔 먹갈치가 있다. '은'에 담긴 고급스러움 대신 '먹'에서 느껴지는 질박함이 목포 갈치의 매력. 옛날 얘기다. 솔직히 요즘은 구분이 없다. 이튿날 새벽 수협 위판장에 나가 물어봤더니 추자도에서 잡아온 갈치란다. 연해 갈치가 귀해진 지 오래라, 목포나 부산이나 제주나 먹는 갈치는 십중팔구 같은 놈들이다. 그래도 목포 앞바다엔 밤마다 갈치배가 떠 있다. 운 좋으면 "빈내(비린내)가 없고 슴슴한 듯하면서도 짱짱한" 목포 먹갈치의 맛을 볼 수 있다. 서서히 알이 들어가는 겨울, 갈치맛 하나만으로 목포를 찾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 오후 4시30분, 남교동 주택가 분식집
목포 상권의 중심이 하당동 신시가지로 옮겨가고 목포역전 원도심은 천천히 낡아가고 있다. 역전 오거리엔 원래 길거리 음식을 파는 행상이 많았다. 그런데 몇 해 전 행상들의 리어카는 모두 쫓겨났고, 유럽의 거리를 본뜬 루미나리에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외지인의 눈에 그건 낡아감의 속도를 멈추기보단 되레 퇴락의 분위기를 더욱 스산하게 만드는 풍경으로 비쳐진다. 정겹고 왁자하던 분위기가 사라져버린 거리를 걷자니 다시 출출해졌다.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남교동 골목, 분식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목포 분식집의 메뉴판엔 라면, 김밥, 떡볶이와 나란하게 팥죽이 적혀 있다. 내력이 꽤 길다. 19세기 말 목포가 개항된 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시장의 뱃사람들, 좌판의 행상들, 어중이떠중이 날품팔이꾼들은 한결같이 배가 고팠는데, 그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싼값에 팔기에 팥죽 만한 것이 없었다. 개항기의 풍경은 이제 역사책 속에만 남았다. 하지만 세월보다 모진 것이 입맛이어서 팥죽은 여전히 현역으로 목포 사람들의 속을 뜨끈하게 데워주고 있다. 동동 새알심이 뜬 팥죽 한 그릇과 달면서도 시원한 호박식혜 한 사발이 이루는 마리아주는, 맛보지 않은 사람은 닿을 수 없는 파라다이스의 경계다.
# 오후 8시, 중앙동 민어회거리 횟집
목포가 내세우는 오미(五味)는 민어와 갈치, 낙지, 홍어, 꽃게다. 그 중 낙지를 저녁 메뉴로 골랐다. 낙지는 음력 시월께 꽉 알이 찬다. 힘이 굉장해서 제대로 씹지 않으면 입천장에 붙은 빨판을 떼느라 고생할 수 있다. 낙지는 뻘에 박혀 사는 생물이라 같은 전라도 바닷가에서도 지역에 따라 서로 맛이 다르다고 한다. 목포도 다리가 가느다란 세발낙지가 난다. 하지만 다른 곳보다 훨씬 맛이 부드럽단다. 괜히 하는 얘기가 아닐까. 이유를 물어봤다.
"요것이 지가 사는 뻘을 닮는당께. 목포 갯벌, 특히 옥도 갯벌이 월매나 보들보들한지… 요것도 딱 그 맛이여. 목포 낙지 먹다가 딴 건 뻐셔서(뻣뻣해서) 못 먹는당께."
산낙지와 연포탕은 기본. 목포의 맛을 보려면 '탕탕'과 '낙지 호롱'을 주문해야 한다. 탕탕은 이름이 그대로 레시피다. 소금물에 담가 살짝 기절시킨 낙지를 도마에 얹어 놓고 사정없이 탕탕 "조사서(다져서)" 만든다. 다진 낙지를 접시에 담고 참기름과 참깨를 듬뿍 넣고 날계란을 하나 푼다.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입에 넣으면 갯벌의 향과 육지의 고소함이 어울린 담백함이 목구멍에 퍼진다. 꿈틀거리는 질감을 징그러워하는 사람이라도 마음 놓고 산낙지의 맛을 볼 수 있는 방법이다.
낙지호롱은 젓가락에 낙지를 감은 뒤 매운 양념을 발라 연탄불에 구운 것이다. 겉모습만 보자면 왠지 불량식품 같지만 섬사람들이 제사상에 올리던 예스러운 음식이다. 극강의 미식가들의 표적이 되는 별식일 뿐 아니라, 전국의 내로라하는 술꾼들이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술안주.
# 오전 7시, 호남동 기찻길옆 일식집
해장이 필요한 시간. 목포 사람들이 해장국으로 즐겨 먹는 음식은 우럭강국과 생장어탕이다. 눈 앞에 목포의 햇살이 어지럽게 산란하는 숙취의 아침, 둘 중 무얼 먹을지 결정하는 일엔 적잖은 고통이 따른다. 이번엔 간단히 결정됐다. 우럭강국집은 아직 문 열기 전이고 생장어탕집엔 밥 끓는 연기가 그득했다. 목포 생장어탕집의 재료는 자연산 붕장어(아나고)다. 항생제를 써서 양식한 장어가 아니라 바다에서 건진 놈만 쓰는데, 역시나 산지가 가깝다 보니 자연산임에도 값이 저렴하다. 서울의 뼈다귀 해장국 값이면 맛볼 수 있다.
느끼할 것 같지만 의외로 맛이 깔끔하다. 집된장을 풀어서 기본 양념으로 쓰고 고추로 칼칼함을 더했다. 분명 묵직한 맛인데도 아침에 먹기 부담이 없다. 고기의 양이 많은 편이라 아침 식사를 가볍게 하는 편이라면 공기밥엔 손을 대지 않는 게 낫다. 목포 원도심에서 맛볼 수 있는 또 다른 해장 겸 아침 대용식은 콩물. 삶은 콩을 맷돌에 갈아 먹는 단순하면서도 든든한 음식이다. 벌컥벌컥, 쓰린 속을 콩물 한 사발로 달래는 모습도 목포의 진면목 가운데 하나다.
# 오후 1시, 금동 옛 시장터 꽃게집
쪄서 먹거나 간장에 담가 먹는 꽃게. 목포에 가선 무쳐서 먹어봐야 한다. 전라남도가 지정하는 '별미 음식 1호'의 자리를 이 꽃게무침이 차지했다. 고춧가루가 주가 되는 양념게장과 생긴 건 비슷하지만 맛은 확연히 다르다. 분명 빨간 색인데 맵지 않다. 매운 맛이 덜한 태양초 고추를 구해 마늘, 생강, 참기름, 참깨 등 여러 소스를 버무려 만든다. 꽃게는 늦가을까지 잡히지만 봄에 잡힌 꽃게를 냉동해 뒀다 일년 내내 쓴다. 통째로 요리해 내는 꽃게무침과 살만 따로 발라 만든 꽃게살무침이 있다. 게장과 달리 이가 약한 노인들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럽다.
시각적 인상은 무척 강렬하다. 그래서 맛도 과격할 것만 같다. 하지만 양념 밴 게살을 한 숟갈 떠 밥에 비벼 입에 넣는 순간, 군침이 입안에서 뿜어져 나와 저절로 회전한다. 달차근하면서도맵싸한 맛, 바로 감칠맛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된다. 괜찮은 맛을 표현하는 방법이 여럿 있을 텐데 이 꽃게무침을 놓고 말하자면 '멈출 수 없는 맛'이 적절하겠다. 옆구리에 찬바람이 파고드는 계절, 혀를 유혹하는 목포의 매력이 대개 그렇다 하겠다.
여행수첩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 안쪽 선창에 목포의 바다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 횟집 거리가 있다. 부근에 생선과 건어물을 파는 시장도 있다. 목포종합수산시장 (061)245-5096 새로 개통한 목포대교 부근 북항의 물가가 더 싼 편이다. 목포해양수산복합센터 (061)277-9744 ●목포시는 지역 음식의 관광상품화를 목적으로 꽃게(옥정한정식ㆍ061-243-0012), 갈치(명인집ㆍ061-245-8808), 민어(영란횟집ㆍ061-244-00311), 낙지(독천식당ㆍ061-242-6528) 등 각 분야의 음식명인 14인을 지정해 두고 있다. 목포시 관광과 (061)270-8430
목포=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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