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밀을 누설한 사람에게 최고 10년의 징역형을 처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 특정비밀보호법안이 26일 일본 중의원을 통과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며 반대하는 야당과 시민단체, 언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법안 통과를 강행, 일본 정국이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본 중의원은 이날 저녁 본회의에서 특정비밀보호법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 자민ㆍ공명 연립여당과 다함께당의 찬성 속에 법안을 통과시켰다. 제1야당인 민주당과 공산당, 사민당, 생활당 등은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고 일본유신회는 추가 심의를 요구했지만 과반을 훨씬 넘는 연립여당의 '수적 우위'를 막지 못했다. 법안은 27일 참의원 심의를 앞두고 있지만 중의원에서 결정 난 법안을 참의원이 뒤집을 수 없는데다 양원 모두 여대야소인 상황이어서 사실상 법안이 통과된 셈이다.
특정비밀보호법은 방위, 외교, 간첩행위 등 특정유해활동과 테러활동 방지 등에 대한 사항 중 국가 안보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정보를 각료 및 행정기관의 장이 '특정기밀'로 지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무기, 탄약, 항공기 수량 및 성능, 방위용 암호, 외국 정부와의 중요 협상 내용 등이다. 공무원이 특정기밀을 누설하면 최고 징역 10년, 누설을 방조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일본 언론은 이 법안이 발효되면 공무원으로부터 특정기밀을 얻은 언론인도 처벌대상이 될 수 있으며, 정부와 행정기관이 감추고 싶은 정보를 자의적으로 비밀로 지정할 수 있어 국민의 알권리를 크게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유력 신문인 아사히 신문은 비밀보호법안이 발효되면 총리의 동정조차 제대로 전할 수 없게 된다며 군데군데 먹칠한 사설을 지난 달 30일 싣기도 했다.
마고사키 우케루 전 외무성 국제정보국장은 최근 기고문에서 "비밀보호법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로 자위대가 미군과 함께 전쟁할 경우 미군의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의도"라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목숨을 건 아베 정권이 법안 통과를 강행하는 것은 이런 이유"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도 거세게 반발했다. 특정비밀보호법안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 220여명은 이날 낮 도쿄 긴자에서 시위행진을 갖고 "비밀보호법 반대" "강행 체결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를 주도한 음악평론가 유카와 레이코는 "특정비밀보호법안은 악마 같은 법안"이라며 "무엇이 비밀인지를 권력자가 비밀리에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하다"고 비난했다. 시민단체 회원 300여명도 이날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시위를 열었다.
25일 후쿠시마현에서 열린 비밀보호법안 관련 공청회에서는 공청회에 참석한 7명 전원이 법안에 반대하기도 했다.
교도통신이 23, 2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특정비밀보호법안이 제정될 경우 국민의 알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62.9%에 달하는 등 부정적 여론이 압도적이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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