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정년 퇴직한 손재하(62)씨는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박람회장'을 찾았다. 채용공고 게시판을 꼼꼼하게 둘러보던 그는 삼성 테크윈 부스를 찾아가 취업상담을 받았다. 국방부 산하 기관에서 30년 넘게 품질보증 관련 업무를 봤던 손씨는 "지난 경력을 토대로 방위산업 관련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며 "전일제 일자리에 비해 보수는 적고 반쪽 일자리라는 지적도 들었지만 체력적인 문제로 풀타임 일자리가 부담스러운 정년퇴직자들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공동주최로 열린 이날 박람회에는 총 10개 그룹 82개 계열사가 참여했다. 1만 명 채용을 목표로 90여개의 부스가 설치됐고, 아침부터 많은 인파가 몰렸다. 면담을 받으려는 구직자들은 번호표를 뽑아 차례를 기다렸고, 최소 30분 길게는 1시간 넘게 부스 앞에 대기해야 했다. 최소 3만명의 구직자들이 다녀간 것으로 주최측은 추산했다.
양복차림의 젊은이들로 붐비는 일반 채용박람회장과 달리, 이날 현장을 찾은 구직자들은 평상복차림의 중ㆍ장년층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특성상 정년퇴직자와 주부의 비중이 월등히 높았고, 젊은이들은 10~20%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 대학에 입학하며 일을 그만둔 '만학도' 박연서(47)씨는 "틈틈이 입시공부를 하기 위해 시간활용이 용이한 직장으로 4차례 이직했다"며 "그러나 풀타임 근무를 하면서 도저히 대학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 결국 일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제 일자리를 갖게 되면 나처럼 학업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구직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허양자(58)씨도 "경력이라고 해봐야 20년 여행사 가이드 일을 한 것이 전부"라며 "나이도 많고 경력도 단순한 구직자들이 풀타임 일자리를 찾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이드 일을 하며 익힌 일본어를 활용해 문서번역 사무직을 찾겠다며 쉼 없이 부스를 돌아다녔다.
반면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혹은 정식취업에 앞서 예비취업 차원에서 박람회장을 찾은 청년 구직자들도 눈에 띄었다. 객실승무원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인 이다혜(22)씨는 "항공사 승무원 취업문턱이 높아 일단 비슷한 업종에서라도 경력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탑승수속 업무를 맡는 일자리가 나와 면접을 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퇴직자, 경단녀(출산 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여성)들의 상대적 높은 만족도와 달리, 청년 구직자들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 역력했다. 사회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파트타임 일자리가 맘에 들리 없었다. 해외유학을 마치고 1년 넘게 취업을 준비 중이라는 황모(28)씨는 "주변에서 첫 직장이 평생을 좌우한다며 신중히 선택하라고 하는데, 파트타임 일자리가 경력 쌓기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워낙 취업이 어려워 일단 박람회장을 찾았지만 풀타임 전환 가능성 등을 꼼꼼히 따져본 후 만약 불가능하다면 다시 내년 상반기 기업공채 시즌을 노려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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