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말들이 매우 강퍅하다. 여든 야든 혹은 재야든 미숙한 십대들처럼 치기어린 말들을 불쑥불쑥 던지는 걸 보면, 이미 사태는 '막말' 차원을 넘어서 용인할 수 없는 위험 수위에 다다른 게 아닌지 우려된다.

대통령을 '박근혜씨'라고 호칭한 통진당 대표에게 새누리당 대변인이 '석고대죄'하라고 호통 치고, 야당인 민주당 역시 여당에게 '석고대죄'를 요구한다. '석고대죄'의 사전적 정의는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거적을 깔고 엎드려서 임금의 처분이나 명령을 기다리는 일이다. 조선 시대 경복궁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여의도에서 '석고대죄'하라 호통 치는 국회의 여야 대변인들은 결국 인민의 대표라는 국회의 존재 이유를 부정한 셈이다. 설혹 정치적 수사에 불과할지라도, '석고대죄'는 그 대변인들의 머리가 어디를 향해있는지를 은연중에 드러내버렸다. 민의를 잘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성은'에 보답하는 충신이 이들의 정치적 지향인 것이다.

'석고대죄' 공방 다음에는, 사이버 군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의원에 대해 한 여당의원이 '종북하지 말고 차라리 월북하라'고 외쳐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그의 반공주의 정치 쇼는 당과 국가에 대한 모든 비판을 제국주의 스파이의 사주 혹은 반동분자의 책동으로 돌린 현실 사회주의의 정치적 문법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그리고는 다시 '애비나 딸이나'의 막말로 전·현직 대통령을 빗댄 김용민 표 막말이 터져 나와 공공적 비판의 장을 황폐화시켰다. 막말 논란이 비판의 예봉을 꺾어 버린 것이다. 이에 비하면 막말하는 네티즌들에게 '븅딱, 찌질이'라고 응수한 이외수의 막말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그나마 제법 족보 있는 이들의 막말도 생경하고 조악한 북한의 원색적 정치 수사에 비하면 아직 새 발의 피다.

'괴뢰역적패당', '미제 승냥이', '철 천지 원수' 등 상대방에 대한 원색적 비난은 치졸의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고, 심지어는 집단행동에 나선 스스로를 '개떼'로 묘사하는 실정이다. 남한의 일부 학생운동권에서 먼저 받아들인 '개떼'의 수사는 이제 좌·우가 모두 즐기는 표현이 되고, 스스로를 '개떼'로 자처하는 사이버 우파 '일베'의 수사는 차마 옮겨 적을 수조차 없다.

촌스럽게 복고적이고, 단세포적으로 살벌하고, 치기로 가득 찬 막말들이 난무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적 공공영역은 참으로 암울하다. 이 막말들이 참담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그것들이 한국 사회의 품격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는 고상한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말이 갖는 수행성 때문이다.

언어의 수행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말은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상부구조가 아니다. 말은 현실을 반영하고 묘사하는 도구를 넘어서, 현실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준거 틀인 것이다. 어떤 말로 현실을 이해하고 묘사하는가에 따라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이 달라지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 다르면, 현실에 개입하고 실천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막말들이 무서운 것은 그 막말의 대상들을 싹쓸이의 표적으로 삼기 쉽다는 점이다. 제노사이드로 가는 길은 석고대죄, 종북 분자, 제국주의 스파이, 인민의 적, 빨갱이, 하층 인간, 박멸해야 할 기생충 등 극단적으로 야만적인 정치 언어들로 포장되어 있다. 나치와 스탈린주의의 경험에서 보듯이, 말이 죽음을 불러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경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 막말의 정치학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영역에까지 깊이 침투되어 있다는 점이다. "XX사장 너 죽고 나 죽자", "00군민 무시하는 XX위원들은 할복하라" 등등의 원색적 적의를 드러내는 플래카드들이 출렁대는 시골길을 지나면서 가슴이 철렁해진 경험이 많이들 있을 것이다.

물론 이 플래카드들의 강렬한 정치적 언어는 그만큼 이들이 느끼는 정치적·사회적 소외감이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러나 이 언어들은 청자인 상대방을 소외시켜야만 화자인 우리가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소외의 제로섬 게임을 연상시킨다. 막말의 정치학은 소외의 악순환을 낳고 급기야는 범주적 살해를 불러온다. 말이 먼저 무서운 이유이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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