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정책 실패로 애물단지가 된 농가 사육곰을 도축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된 환경부가 올 6월까지만 해도 정부가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6일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공개한 '환경부 사육곰 민관협의체 회의자료'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 6월 14일 3차 회의 때까지도 사육곰 증식 금지에 따른 보상비용 산정과 기존 사육곰의 매입 방법ㆍ범위, 관리 방안 등을 논의했다. 특히 4월 열린 2차 회의 자료에는 '기존 사육곰의 매입 관련 사안은 업무 성격 및 재원 확보 가능성 등을 고려해 순차적으로 추진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지난 1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윤성규 장관이 "우수리산(반달가슴곰 혈통) 한 두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사육곰은 보존 가치가 없다"고 밝힌 이후 매입에서 도축으로 방침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사육곰 도축비로 1억5,000만원, 사체처리비로 3억원을 편성했다. 현재 전국 53개 농가에서 사육곰 998마리를 기르고 있다.
환경단체와 사육농가는 정부가 정책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1981년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어린 곰을 수입해 키운 뒤 재수출하도록 권장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1993년 곰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수출길이 막혔다. 이후 정부는 10년 이상 된 사육곰의 웅담을 채취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웅담 수요가 줄면서 정부 말만 믿고 키웠던 농가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사육곰 농가들로 구성된 전국사육곰협회 김광수 사무국장은 "곰 증식 금지 조치는 사실상 폐업과도 같은데 마리당 도축비와 사체처리비로 150만원을 편성한 것은 농가를 우롱한 것"이라며 "정부가 사육곰을 매입하기 전에는 불임 수술 등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예산 부담 등으로 사육곰 재산 가치를 직접 보상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사육곰 매입 비용은 마리당 1,000만원으로 추산된다.
윤상훈 녹색연합 정책팀장은 "10년간 이 문제를 놓고 민관 협의를 해왔고 최근에는 정부가 사육곰을 매입해 대학 연구소에 기증하거나 테마파크, 보호센터를 만드는 등의 방안을 논의했는데 윤 장관이 부임하며 환경부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곰을 멸종위기동물이 아닌 가축으로 취급하는 장관 인식이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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