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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찬바람 불면 목포에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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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찬바람 불면 목포에 가야한다

입력
2013.11.26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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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는 고향집 아랫목처럼 푸근한 풍경을 품었다. 풍파에도 끄덕 않을 유달산이 있고, 지난한 삶에 큰 위로 됐던 삼학도와 이난영의 노랫가락이 있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는 것들이 태반이다. 가슴에 새기면 여운이 오래간다. 이러니 얼른 가서 이 땅 밟고 오면, 바람 더 차가워져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모질고 거센 세상에 든든한 보금자리…유달산

고하도(高下島)에서 가장 높은 뫼막개(뫼봉)에선 유달산이 참 잘 보인다. 목포에서 섬까지 바닷길은 약 2km. 지난해에 목포대교가 놓인 뒤로 섬에 가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능선 따라 조성된 약 3km의 산책로는 왕복 약 2시간 30분 거리. 바다 쪽에서 유달산 바라보는데 이 섬만한 장소가 없어 보인다. 충무공 영정 모신 사당과 육지면 시배지 비석이 섬에 남아있으니 함께 둘러봐도 좋다. 충무공은 정유재란 때 명량대첩에서 대승을 거두고 이 섬에서 조선 수군을 재정비했다. 옷을 만들어 입는데 쓰이는 미국산 육지면(목화의 한 종류)도 이 섬에서 처음 재배됐다.

육지의 끝에 느닷없이 솟은 유달산의 자태가 아주 당당당하다. 1970년대 녹화사업 이후 바위산의 산세는 조금 순해졌다. 그러나 ‘한 점 수석 같은 풍치’는 변함없다.

볕 받은 산허리 동네는 평온하다. 마니아들에게 잘 알려진 온금동도 바다 건너 보인다. 일제강점기 이래로 가난한 어부들이 모여 살던 이 일대는 조금 때 태어난 아이들이 많아서 ‘조금새끼마을’로 불렸다. 조금 무렵의 물때에는 물고기가 잘 안 잡히니 이 때 부부관계를 맺는 집들이 많았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조금새끼’다. 집집마다 동갑내기 많았고, 풍랑으로 한날한시에 남편 잃어버려 제삿날 같은 집도 많았다.

이렇듯 유달산자락 동네마다 근대 질박한 서민들의 흔적이 오롯하다. ‘값비싼’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1980년대 초반까지 달성동 일대에 초가집 짓고 살았다. 북교동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동네, 유달동은 반대로 일본 사람들 기거하던 곳이다. 두 동네의 경계인 목포오거리는 늘 팽팽한 긴장의 땅이었다. 시간 흐르면서 달성동 초가집 모여 있던 자리는 조각공원이 됐다. 온금동 일대는 재개발이 한창 화두다.

‘유달산자락 빼면 평평한 땅은 한 평도 없다’고 1930년대 발간된 는 설명한다. 지금 목포 땅덩어리의 60~70%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된 간척의 결과다. 이전까지 “유달산이 목포였고, 목포가 유달산”이었다. 이러니 목포 사람들에게 유달산은 말로만 ‘상징’이 아니다. 살 비비며 몸 붙이고 살던 진정한 터전이다. 조대형(70) 목포시 문화관광해설사는 말했다. 뭍으로 무안 고개 넘어서 이 땅으로 드나, 뱃길로 고하도 에둘러서 상륙하나,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저 바위산이었다고. 모질고 거센 세상 어려움을 이 굳건한 바위산에 기대 견뎠다. 지금도 옹골진 산 하나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 이 땅에 수두룩하다.

유달산에는 사연 깃든 장소도 많다. 등산로 입구 노적봉은 충무공이 정유재란 때 노적(곡식 따위를 한데에 수북이 쌓은 물건)처럼 보이게 해 왜구를 속였다는 바위다. 이를 돌아가 만나는 다산목(多産木)은 여인이 두 다리 벌리고 드러누운 모양새가 기가 막히다. 산 중턱 이난영 노래비는 우리나라 노래비의 시초다. 일제강점기 일본 사찰이 이 산에 들면서 정상까지 세웠다는 일본식 불상의 흔적들도 곳곳에서 보인다.

해질 무렵 유달산 정상 일등봉(일등바위․228m)에 선다. 정상까지 약 40분 거리다. 산을 알고 오르니 산이 보인다. 목포대교의 조명이 은근하다. 고하도의 불빛은 용의 비늘처럼 화려하다. 그 뒤로 수많은 섬이 바다에 둥실 떠 있다. 등 뒤로 도시다. 바다 메워 세운 도시의 불빛은 환하고, 가까이 옛 동네의 불빛은 낡은 기억처럼 희미하다. 어둑한 동네 바라보며 늘 그리워질 산 하나 가슴에 새긴다.

▲풍파에 위안이 된 삼학도와 ‘목포의 눈물’

삼학도는 대삼학도, 중삼학도, 소삼학도 등 세 개 섬으로 이뤄졌다. 뭍에서 1km 남짓 떨어져 있는데, 이 섬의 사연이 참 유별나다.

삼학도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궁핍했던 시절, 고단함 잊고 배 타고 들어와 헤엄치고, 씨름하고, 사랑 속삭이던 친근한 섬이었다. 60~70년대 들어 간척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지며 육지가 된다. 외국에서 들여온 석탄, 밀가루 등을 내륙으로 실어 나를 전초기지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섬 외곽에 부두가 생기고, 제분공장도 들어섰다. 산자락 절단된 곳엔 집들이 난립했다. 삼학도선(線)이 놓인 것도 이 무렵이다. 부두와 공장에서 목포역까지 물자를 운반하던 철로가 삼학도선이다. 도심의 상점들 옆을 스치듯 딱 붙어 지나는 것으로 이목을 끌었던 그 철로다. 섬은 이렇게 육지가 되더니, 결국 볼품없는 땅으로 추락했다.

그런데 지난 2000년 복원사업을 시작으로 최근 다시 섬이 됐다. 사람들은 평평하게 잘렸던 중삼학도, 소삼학도에 흙을 쌓아 산을 만들었다. 섬 주변에 물골을 내고 바닷물을 들였다. 우후죽순 들어섰던 집과 절, 공장을 옮겼다. 삼학도선의 화물열차는 더 이상 다니지 않고, 남아있는 철로도 내년이면 없어질 예정이다.

가수 이난영(1916~1965)도 삼학도로 데려왔다. 희망 없고 고단했던 1930~40년대에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를 부르며 이 땅 사람들뿐만 아니라 민족을 위로했던 ‘국민가수’ 말이다. 정종득 목포시장과 시민들은 대삼학도 중턱에 난영공원 만들고, 경기도 파주에 묻혀있던 그를 지난 2006년 옮겨와 백일홍 나무 아래 수목장(유골을 나무 밑에 묻는 장묘 방법)했다. 애틋한 그의 음성으로 주옥같은 노래를 들을 수 있게 음향시설도 잘 만들었다. 난영공원은 양동의 생가터, 유달산 중턱의 노래비와 함께 목포에서 이난영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로 이미 자리매김했다.

수천억원 들여서, 수년의 공사 거치는 수고 감당하며 뭍이 된 섬에 제자리, 제모습 찾아준 것은 풍파에 위로를 건네던 섬이 그리워서 아닐까. 양지 바른 곳에 이난영을 옮겨 묻은 것은 먹먹한 처지를 대신 넋두리해 주던 처연한 노랫가락 떠올라서 아닐까. 살림살이 퍽퍽한 요즘, 다시 돌아온 삼학도가 이 땅 사람들에게 참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까. 날씨 포근한 계절이면 섬 바라보며 카누도 타고 요트도 탄다. 대삼학도 에두르는 산책로를 걸으며, 헤엄치고 씨름하던 그때의 기억을 좇는다.

난영공원의 은행나무가 한창 잎을 떨군다. 공원에 놓인 의자에 앉으니 목포 앞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사는 것 힘들던 시절, 이 소박한 항구 도시의 사람들에게 섬이 건네던 위로가 바다 위에서 아른 거린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노랫가락 흥얼거리니 고단한 일상 버틸 힘이 생긴다.

곧 닥칠 한기 잊게 해줄 것들이 목포에 많다. 더 추워지기 전에 다녀와야 한다.

▲여행메모…오감만족 ‘목포5味’

목포에는 다섯 가지 맛있는 음식이 있다. 이를 ‘목포5味’라 하는데 홍어삼합, 민어회, 갈치찜, 세발낙지, 꽃게무침이 그것이다.

목포하면 홍어다. 홍어의 최고 어장으로 꼽히는 흑산 앞바다에서 그래도 가까운 곳이 목포다. 가을에서 이듬해 봄이 홍어가 가장 맛있을 때다. 폭 삭힌 홍어와 돼지고기, 묵은 김치와 함께 먹는 홍어삼합은 남도의 진한 풍미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하당 평화광장 인근 흑산도풍경(061-242-1155)는 흑산 홍어를 취급한다. 육질 참 부드럽고 삭힌 정도도 적당하다. 목포 종합수산시장 주변에 흑산 홍어 등을 취급하는 전문점이 많다,

갈치도 지금이 제철이다. 목포의 갈치는 먹갈치가 대부분이다. 거무튀튀한 빛깔 때문에 이렇게 불리는데, 그물로 잡는 통에 비늘이 벗겨진 탓이다. 제주해역에서 주로 잡히는 은갈치에 비해 씨알이 굵고, 고소한 맛도 더 강하다. 미식가들 중에는 별미거리로 제주 은갈치에 비해 먹갈치를 찾는 이들 많다. 온금동 옛 선창 부근의 선경준치회집(061-242-5653)은 갈치찜, 갈치구이를 비롯해 각종 생선요리로 현지에서 유명하다.

‘민어의 거리’가 있을 만큼 목포 사람들은 민어를 즐긴다. 민어회는 부드러운 육질과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여름이 제철이지만 지금도 맛볼 수 있다. 민어전도 맛있다. 부드러운 갯벌에서 잡히는 목포 뻘낙지는 다리도 길고 맛도 뛰어나다. 낙지를 잘게 썰어 달걀노른자를 곁들인 이른바 ‘낙지탕탕’이도 별미다.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중앙동의 영란횟집(061-243-7311)에서 민어회, 민어전, 낙지탕탕이 등을 맛볼 수 있다.

달콤짭조름한 간장이나 양념에 숙성한 게장, 양념에 버무린 꽃게무침 등은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상동에 위치한 금모래(061-285-3900)가 유명하다.

상동 일대에 숙소가 많다. 샹그리아 비치 관광호텔(061-285-0100)은 바다 조망 객실이 있고 시설도 깨끗해 가족끼리 묵기에 적당하다. 목포시관광과 (061)270-8431

목포=글ㆍ사진 김성환기자

한국스포츠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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